“행정안전부 신임 장관이 (제동을 건 건) 무슨 의도가 있는 것 아닌가 싶어요. 이 사업은 향후 백 년을 바라보고 시작했어요. (장관이) 큰 그림을 보고 사안의 경중을 따져야지 당장 어린이집, 경비대가 어떻고…. 정부를 대표하는 장관이 그러는 건 좀 안 맞는다는 생각이에요.” (김원 광화문시민위원회 위원장)
“대통령 공약은 광화문에 집무실이 내려오고, 경복궁을 열어서 시민이 북악산까지 올라가게 하겠다는 거예요. 행안부 장관이면 그 정신을 이어받아서 거꾸로 광화문광장 조성에 적극 앞장서야죠.” (함인선 광화문시민위 도시공간분과 위원장)
행안부가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에 제동을 건 데 대해 서울시민을 대표하는 광화문시민위원회가 반론을 제기했다. 21일 서울 중구 한 호텔에 모인 시민위원들은 “행안부에서 시민 소통이 부재했다고 하다니 인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오히려 이렇게 장시간 회의하며 시민과 소통하는 모습을 공공부문에서 본 적이 없다”며 “행안부는 정책 입안을 할 때 어떤 소통을 했는지 벤치마킹할 만한 방법을 보여 달라”고 주문했다. 시민대표들은 광장 재구조화를 시민이 주도했음을 강조하며 ‘박원순의 광장’으로 보는 데 불만을 표했다. 행안부는 앞서 지난달 30일과 이달 9일 두 번에 걸쳐 공문을 보내 서울시가 광장 조성을 늦춰 줄 것을 주문했다.
◆“행안부가 앞마당도 양보했으면”
광화문시민위는 광장 재구조화를 논의하는 시민 모임으로 지난해 7월 출범했다. 2016년 7월 결성된 광화문포럼을 확대 개편한 조직이다. 총 4개 분과로 이뤄져 있다. 이날 자리에는 김 위원장을 비롯해 시민소통분과 이정구 위원장, 역사관광분과 홍순민 위원장, 도시공간분과 함 위원장, 시민참여단 남복희 시민대표가 함께했다. 문화예술분과는 사정상 참여하지 못했다.
이들은 행안부가 서울시의 일방통행을 이유로 반대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광장 조성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홍 위원장은 “정부청사 자리는 조선시대 삼군부 터로, 철학이 없던 1960년대에 급하게 지은 것”이라며 “서쪽인 청사 자리에 삼군부, 동쪽으로 의정부가 있어서 좌우 문무가 균형을 갖춘 공간이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봤을 때 오히려 행안부가 현재 주차장인 청사 앞쪽을 광장에 양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시민대표로서 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해온 이들은 서울시가 소통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억울해했다. 소통 부족의 근거로는 지난달 22일 11개 시민단체가 연 ‘사업중단 요구 기자회견’이 주로 언급된다. 함 위원장은 “저희가 지난 4년간 이 일을 주최하면서 광장 관련 주요 사항을 결정했고, 박 시장이 저희에게 모든 권한을 줬다”며 “시민대표들이 시민과도 소통하고 있는데 몇 개 시민단체가 소외됐다고 소통 부재라고 하는 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이어 “시민위에는 세 종류의 시민이 있는데 종로구 주민, 일반 시민, 직업적 시민”이라며 “직업적 시민은 저 같은 전문가나 시민단체 활동가들로, 전문가들 역시 시민의 한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시민소통분과에서는 전화·인터넷 설문부터 각종 강의까지 시민과 소통법을 계속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남 시민대표는 “시민단체가 1000만 시민을 대변할 수 있는가”라고 문제 제기했다. 그는 “보도를 보면 박 시장을 공격하고 싶어서 광장 재구조화를 핑계 삼는 것 같다”며 “왜 이렇게 시민·역사·미래를 바라보고 하는 일들을 자꾸 정치와 결부시키는가”라고 꼬집었다. “서울시민을 얼마나 수준 낮게 보면 시민이 이런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하는가”라고도 덧붙였다.
◆“광장 시민 손으로 만들고 있어”
이들에게 광화문은 ‘시민의 광장이자 시민의 사업’이었다. 김 위원장은 “아주 큰 오해가 광화문광장을 박 시장의 일이다, 임기 중에 하려고 서두른다고 보는 것”이라며 “시민위원장으로서 답답하고 불만”이라고 말했다. 함 위원장은 “저희가 시민대표로서 전문성을 갖고 주체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하면 서울시에서 집행하는 것”이라며 “공무원들이 와서 이렇게 저렇게 해 달라, 시장 의중이 이러니 반영해 달라 식의 일은 일절 없었다”고 단언했다.
이들은 2016년 광화문포럼에 참여하며 시민과 광장 조성을 주도해 왔다. 남 시민대표의 경우 간호사 출신으로 20년간 전업주부였다. 그는 서울시 홈페이지의 시민 모집공고를 보고 참여했다. 당시 100명의 시민이 함께했다. 그는 “2009년 플라워양탄자라면서 새 광화문광장이 공개된 걸 보고 ‘시민이 가만히, 조용히 있으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구나’ 했다”고 회상했다.
워낙 다양한 목소리가 모이다 보니 포럼은 늘 시끄러웠다. 광장 재조성 자체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불거졌다. 남 시민대표는 “일반 시민이 모인 시민참여단은 지난 4년간 싸우다시피 할 정도로 치열하게 자기 의견을 내왔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얼마나 토론을 세게 했냐면 제가 토론사회를 보는 데 반대의견인 시민분이 바닥에 앉아서 ‘김원씨 내려오시오’ 할 정도였다”며 “회의할 때 결론이 안 나면 밥 먹으면서 하고, 그래도 끝이 안 나면 술 먹으면서, 그래도 안 되면 밤을 새워서라도 끝장토론을 해서 합의를 도출했다”고 전했다. 초반에 ‘교통마비’를 우려한 교통 전문가들이 1년간 이런 토론을 거치며 생각을 바꿨다. 논의 끝에 나온 결론은 ‘광화문은 긴 안목으로 봤을 때 100% 시민 보행 위주로 가야 한다’였다.
◆역사가 소통하는 광장… 월대 복원은 핵심
시민위원회는 ‘100% 보행 위주’라는 큰 틀에서 출발해 광장의 뼈대를 그려나갔다. 역사·시민광장 조성, 월대 복원, 교통 대책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부에서는 이 과정에서 ‘광화문광장 디자인이 2005년 건축가 승효상, 유홍준 당시 문화재청장이 제시한 안과 판박이다, 서울시에서 그림을 다 그려놓아 국제설계공모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의혹을 제기한다. 함 위원장은 “계획과 디자인을 구분하지 못해 생긴 오해”라고 해명했다.
그는 “모든 공모에는 달리기의 출발선에 해당하는 계획이 제시되는데, 시민위원회가 이를 만들었다”며 “이를 바탕으로 도로포장, 나무 식재, 벤치 배치 등 디자인에 대해 공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승효상 안과 같다고 비판하는 건 바퀴가 네 개 달렸다고 유모차와 버스가 같다는 논리”라며 “애초에 광화문광장에 도로를 배치하는 건 네 가지 경우의 수밖에 없는 데다 승효상 안은 우리 계획안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했다.
이들은 광화문광장의 역사성을 회복해야 하는 당위성도 강조했다. 홍 위원장은 “광화문에는 대한민국, 일제강점기, 대한제국, 조선시대까지의 흐름이 응축돼 있다”며 “이 공간의 변천이 곧 서울의 변천사요, 더 나아가 한국의 역사를 보여주는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역사의 소통도 이 공간에 주어진 중요한 과제”라며 “이순신 장군 동상부터 경복궁까지 쭉 걸어가면서 역사를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는 도로로 단절돼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경복궁 앞의 월대(궁궐 앞에 놓는 넓은 단)는 이 두 공간을 잇는 중요한 연결고리다. 월대는 과거 경복궁에 있는 임금의 권력과 백성들의 호소가 만나는 접점이었다. 홍 위원장은 “월대 없는 경복궁은 미완”이라며 광화문광장 재조성을 할 때 월대가 복원돼 사직로부터 광장까지 하나로 연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 향유 공간으로…광장 대신 마당 어떤가
이들이 그리는 이상적 광화문광장은 시민이 주인으로서 향유하는 공간이다. 시민위는 이를 위해 광장 재조성 이후 운영 방안을 고민 중이다. 홍 위원장은 “주말이면 데모만 하거나 장사판이 되는 게 아니라 시민이 주체가 돼서 다양하게 문화적·비정치적·비상업적으로 향유하는 공간을 만들자는 데 원론적 합의가 됐다”고 전했다.
시민위에서는 광장이란 명칭에도 이견이 나온다. 광장은 서양의 도시 문화다. 홍 위원장은 “광장 문화는 우리에게 낯설기에 개인적으로는 많은 이들이 모여 일하고 잔치하고 격론을 벌였던 전통 공간인 마당이 어떨까 싶다”고 했다.
남 시민대표는 “제가 생각하는 광장은 한쪽에서는 버스킹하고 한쪽에서는 여유를 즐길 수 있어서 몸도 마음도 힘들 때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즐거운 공간”이라고 희망했다. 김 위원장 역시 “베니스 사람은 누구나 산마르코 광장에 가서 커피 마시고 아침 먹고 쇼핑하고 낮잠을 자는 등 그곳이 생활의 중심”이라며 “그곳에 가면 모든 게 다 있는 그런 광장을 만들자”고 말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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