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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생명 걸고 '삭발' 택한 黃...YS· DJ 단식처럼 국면 대전환 이뤄낼까 [박태훈의 스토리뉴스]

입력 : 2019-09-17 06:00:00 수정 : 2019-09-16 21:2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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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전 YS, 23일간 단식으로 민주화 초석 / 29년전 DJ, 단식투쟁으로 지방자치제 실현 / 황교안, ‘조국 파면’ 외치며 청와대 앞서 삭발 / 제1 야당 대표 초유의 삭발, 비장함은 YS· DJ 못잖아 / 文 대통령, 염려와 걱정하며 재고요청 / 여권, 삭발 숨은 뜻은 장관 퇴진아닌 정권 흔들기로 판단 / 제1 야당 대표 충격 선택은 지지층 결집과 메시지 전달 / 릴레이 삭발, 의원직 총사퇴 로 이어질 가능성 / 삭발 약효에 따라 黃의 정치운명, 극과 극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6일 오후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서 '조국 법무장관 파면 요구' 삭발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6일 오후 5시 청와대 앞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파면'을 요구하며 삭발했다. 한국 헌정사상 제1야당 대표가 삭발투쟁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삭발은 단식과 더불어 '죽기를 각오'하고 있음을 알리는 대표적 투쟁수단이다.  

 

존재감이 떨어진다, 지도력이 의문이다는 등 여러 비판을 들었던 황 대표이기에 정치 생명을 걸고 '삭발'에 임한 것으로 보인다. 뜻한 바를 이루면 상상 이상의 이득을 얻을 수 있지만 반대로 빈손으로 끝난다면 입을 피해가 만만찮을 전망이다. 잘되면 기대주에서 야권의 패자(覇者), 잘못되면 당 대표자리마저 위태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 언론자유, 정치활동 보장 외치며 1983년 YS 단식...문민정부 탄생 초석

 

역대 야당 지도자 투쟁 중 가장 유명한 사건은 1983년 김영삼(YS), 1990년 김대중(DJ) 두 전직 대통령의 '단식투쟁'이다. YS와 DJ는 목숨을 건 단식을 통해 대한민국 민주화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1983년 당시 야권 지도자인 YS는 가택연금, DJ는 미국으로 사실상 강제 출국을 당한 상태였다.  

 

그해 5월 2일 YS는 △언론자유 보장 △민주인사 석방 △해직교수와 근로자, 제적생의 복직 및 복교, 복권 △정치활동규제 전면 해제 △ 대통령 직선제로의 개헌 등 5가지 민주화 요구를 했다. 전두환 정권이 외면하자 YS는 광주민주화운동 3주년이 되는 5월 18일 ‘국민에게 드리는 글’이라며  ‘민주화 5개항’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한 뒤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1983년 5월 목숨을 건 YS의 단식을 부인 손명숙 여사, 김동영, 황낙주(오른쪽부터) 등 측근들이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단식 8일째인 5월 25일 YS건강상태가 급격히 나빠지자 관할 노량진 경찰서장은 YS를 구급차에 반강제로 태워 서울대 병원으로 옮겼다. YS는 서울대병원에서도 단식을 멈추지 않았다. 재야 인사들이 동조 단식에 들어가자 전두환 정권은 당황한 기색을 보였고 5월 30일 가택연금을 풀었다.

 

단식 17일째인 6월 3일 서울대 의료진은 '생명이 위태롭다'고 판단했다. 이에 같은 날 김수환 추기경이 병원을 찾아 '생명이 소중하다'며 단식중단을 호소했다. 그럼에도 꿈쩍하지 않던 YS는 23일째인 6월 9일 재야인사들의 간곡한 권유에 단식을 끝냈다. 

 

미국에 있던 DJ는 5월 24일 '김영삼과 연대'를 선언한데 이어 6월4일엔 '김영삼을 구해내라'며 워싱턴 가두행진에 나섰다. 이를 계기로 군부독재 투쟁방법과 노선을 놓고 이견을 보여왔던 YS와 DJ, 재야인사들은 손을 맞잡았으며 1984년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결성으로 이어졌다.   

 

YS단식은 군부독재에 맞설 민주화 세력을 형성케 만들었으며 직선제 개헌, 문민정부 탄생의 초석이 됐다.   

 

◆ 1990년 DJ, 지방자치제 실시 요구하며 단식...1991년 지방의회 선거 

 

1990년 10월 지방자치제 약속 이행 등을 요구하며 단식에 들어간 DJ를 당시 집권여당인 자민당 김종필 최고위원이 방문, 위로와 함께 그만 둘 것을 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DJ는 평민당 총재이던 1990년 10월 8일 지방자치제 전면 실시 등을 요구하며 전면 단식에 들어갔다. DJ는 △ 지방자치제 실시 △ 내각제 개헌 포기 △ 민행문제 해결 △ 군의 정치개입 금지 및 보안사 해체 등을 요구했다.

 

DJ는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단식을 이어가겠다"면서 "요구를 거부할 경우 정권 퇴진 투쟁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YS가 대표로 있던 집권여당 민자당측은 DJ 요구를 일정부분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전달, DJ는 13일만인 10월20일 단식을 중단했다.

 

지방자치제는 1991년 지방의회 선거로 부분 시행된 뒤 1995년 자치단체장 선거를 통해 완전히 실현됐다. 

 

◆ 여권, '조국' 보단 '정권' 흔들기 노림수로 판단...그렇다고 묵살하기엔  

 

100명이 넘는 국회의원을 거느린 거대정당 대표, 또 제1야당 대표가 삭발투쟁에 나선 것은 이번이 사상 처음이다. 삭발이 갖는 정치적 상징성, 메시지 효과가 상당하기에 청와대, 집권여당, 한국당 모두 부담을 안게 됐다.

 

현재로선 여권이 황 대표 요구를 받아 들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국회의 해임안 의결이라는 정상적 절차도 아닌데다 '정권 흔들기' 차원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것 역시 찜찜하다. 당장 한국당이 '독재'라며 다음 단계에 돌입하고 이를 중도층 흡수 전략으로 연결한다면 여권의 총선전략 차질로 이어질 수 있다.

 

황교안 대표가 16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의 '삭발 재고'요청을 "조국을 파면하라"며 거부, 예정대로 삭발하고 있다. 뉴시스

◆ 문 대통령, 강기정 정무수석 통해 '재고 요청'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서 삭발식을 준비 중이던 황교안 대표에게 강기정 정무수석을 보내 '염려와 걱정'의 뜻과 함께 재고를 요청했다.

 

하지만 황 대표는 "조국 장관을 파면해야 한다"는 말로 문 대통령의 청을 뿌리쳤다. 이에 강 수석은 "황 대표의 뜻을 대통령께 잘 전달하겠다"는 말을 한 뒤 돌아섰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이날 오후 수석·보좌관 회의가 끝난 직후 강 수석을 따로 불러 황 대표의 삭발과 관련한 염려와 걱정의 말씀을 전달했다"며 "강 수석은 곧바로 황 대표 비서실장인 김도읍 의원에게 전화해 '국회로 직접 가서 만나 뵙고 대통령의 뜻을 전하겠다'고 했지만 '만나지 않겠다'는 답을 받았다"고 했다.

 

고 대변인은 "그래서 '그러면 분수대로 직접 가서 만나 뵙겠다'고 말씀드렸지만 역시 그쪽에서는 정중히 거절했다"며 "이후 춘추관에서 기자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려고 했는데 황 대표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강 수석이 바로 분수대 앞으로 가서 황 대표를 만나서 대통령의 말씀을 전달했다"고 과정을 설명했다.

 

고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황 대표 삭발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대해선 "(대통령이) 그에 대한 말씀은 없었다"며 말을 아꼈다. 

 

◆ 한국당, 릴레이 삭발→ 의원직 총사퇴, 정권퇴진 운동 수순

 

한국당은 황교안 대표의 요구를 여권이 외면한다면 릴레이 삭발과 함께 의원직 총사퇴, 정권퇴진운동의 수순을 밟는다는 작전을 세웠다.

 

지난 11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 철회를 요구하며 삭발을 한 박인숙 의원(오른쪽), 김숙향 동작갑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을 격려하고 있다. 뉴시스

투쟁 단계를 점차 높여 가는 것으로 지지층을 다지면서 무늬만 야당이 아닌 '선명 야당'임을 강조, 중도층을 끌어 들일 계산이다. 

 

한국당의 가장 큰 고민은 '조국 법무장관' 한명을 정권과 동일시 할 수 있는가, 이런 메시지가 원한만큼의 호소력을 낼지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일단 황교안 대표 삭발 효과를 본 뒤 다음 움직임과 그 정도를 정할 예정이다.

 

◆ 황교안에겐 정치생명을 건 일종의 도박...

 

패스트트랙(신속처리법안) 국면과 조국 장관 논란은 여러 면에서 한국당에겐 호재였다. 하지만 한국당이 이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했다는 것이 분석가들의 평가였고 여론조사 결과도 그러했다.

 

자연히 결정적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책임이 황교안 대표 쪽으로 향했다. 황 대표로선 '아직 기회를 날리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줘야만 했다. 이에 황 대표는 '삭발'하는 것으로 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투쟁하는 야당 지도자로의 변신을 꾀했다. 

 

문제는 황 대표 삭발의 약효 여부. 청와대와 여권보다는 집토끼(보수층)와 중도 무당층을 향한 처방 성격이 짙기에 이들이 어느만큼 지지를 보이느냐가 관심사다.

 

중도층이 움직인다면 황 대표는 한국당은 물론이고 야권의 대표주자로 입지를 다질 수 있다. 그러나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둔다면 '괜한 수고만 했다'는 비아냥과 함께 제1야당을 끌어갈 동력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번 삭발은 적어도 ‘정치 초년생’ 황교안에겐 정치생명을 건 도박인 셈이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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