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22일 뉴욕 유엔총회 참석차 방미하는 계기에 도널드 트럼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기로 했다. 원래 유엔총회에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북한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의 ‘이달 하순 대화’ 제안에 트럼프 대통령이 ‘만남은 언제나 좋은 것’이라는 반응을 내놓으면서 문 대통령의 방미가 전격 결정된 것이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후속 실무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북한의 계속되는 단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그리고 한·미동맹 균열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는 시점에서 열리는 정상회담이라 매우 중요하다 하겠다.
그럼 이번 워싱턴 정상회담에서 한국은 무엇을 목표로 할 것인가. 먼저, 그간 세간에서 제기된 한·미동맹에 대한 우려를 말끔히 해소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과도한 방위비 분담 증액 요구 가능성과 한국 내 미군기지 조기반환 요구 등 그간 다소 감정적 대응으로 비칠 수도 있었던 사안을 둘러싼 불필요한 오해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깔끔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와 더불어 미국의 유엔사 강화 방침, 전시작전권 전환 이후를 둘러싼 동맹의 이견과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어, 북한 비핵화 협상에 확실한 진전을 이루고 더도 덜도 아닌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가 최종 목표라는 점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지금 트럼프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내년에 치러질 대선에서의 승리이고, 모든 관심사는 대선 레이스 일정에 맞춰져 있다고 본다. 이 때문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위험한 불장난을 성공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쇼를 계속하기 위해 북한의 위협을 의도적으로 평가절하 하는 한편, 김 위원장과의 좋은 관계를 강조하는 행보를 계속할 것이다. 최악의 경우 북한의 불완전한 비핵화를 용인한 채 북핵 문제를 미봉할 우려마저 제기된다. 하지만 한국으로서는 북한의 불완전한 비핵화를 결코 수용할 수 없다. 또한 북한의 계속되는 단거리 미사일 시험발사가 한국은 물론 일본에 현재적 위험이라는 점을 분명히 전달해야 한다.
다음으로, 한·미·일 안보협력에 대한 전향적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유럽과 달리 변변한 다자안보협력체 제가 없는 동아시아에서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을 연계함으로써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하고자 한 것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서 오랜 숙원이었다. 미국은 미·일동맹을 ‘주춧돌’로, 한·미동맹을 ‘린치핀’(핵심 축)으로 부르며 중요시하는데, 정작 한·일 간에는 오랜 역사 문제 갈등이나 영유권 문제로 인해 군사안보 분야의 협력이 진척되기 어려웠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한 것은 한·미·일 안보협력을 보이콧하는 것으로 비친다. 또한 한국이 중국으로 경사될지도 모른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줄 우려까지 있다. 청와대는 지소미아 종료 이후 터져나온 국내외의 우려에 대해 이를 오히려 한·미동맹 업그레이드의 계기로 삼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약속을 구체화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끝으로, 신 한반도체제와 평화경제를 향한 과도한 의욕을 자제하고, 남북관계 개선은 북한 비핵화와 비례해서 전개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미 북한은 한·미 공조가 지속되는 한 남북이 따로 대화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중재자’ 역할을 포기하고 남북정상 합의사항 이행에 적극 나오라는 불만의 표시이기도 하다. 이에 당분간 한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찾기보다는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을 적극 지원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국제관계에서 규범이나 가치보다는 치열한 국익 위주 외교전쟁이 벌어지는 ‘각자도생’의 시대에 유사시 한국이 도움 받을 곳은 어디인가. 비록 트럼프 리스크로 인해 불확실성이 커지긴 했지만, 우리 외교안보의 기본은 여전히 견실한 한·미동맹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재확인해야 할 핵심이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한국핵정책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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