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65분간 머리를 맞대고 9번째 정상회담을 가졌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본격 회담 직전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또다시 기자들의 질문을 독식하고 일방적으로 끝내 뒷말을 남겼다. 문 대통령은 한 차례도 답변할 기회를 갖지 못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 결례’를 저지른 게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5시30분 미국 인터콘티넨털 바클레이 호텔에서 열린 정상회담에 앞서 모두발언을 했다. 본격적인 정상회담에 앞서 논의 주제를 간략히 언론에 설명하는 자리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을 만나 뵙게 돼 굉장히 기쁘게 생각한다”고 인사했고, 문 대통령 역시 트럼프 대통령에게 눈길을 주며 이번 정상회담의 의미를 밝혔다. 문 대통령은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가벼운 손동작도 곁들였다.
그 뒤 기자들이 질문을 던지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무대 독점’이 시작됐다. 문 대통령은 한 번도 답변하지 못한 채 트럼프 대통령 혼자 기자들과 17번이나 문답을 주고받았다. 미국 기자들 역시 “총기규제 계획을 발표할 것인지”, “바그다드에 떨어진 미사일이 지역 긴장을 고조시킬 것인지” 등과 같이 한·미 정상회담과 관련이 없는 질문을 던졌고, 트럼프 대통령 역시 장황하게 답변을 이어갔다. 때로는 “민주당은 정말 쓸데없는 일에 시간 낭비를 한다”, “속보는 항상 있고, 속보는 보통 가짜뉴스”라며 미국 민주당과 언론에 대한 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기자와 질문과 답변이 엇갈리는 장면도 나왔다. 대북 제재에 대한 한 기자의 질문을 놓고 트럼프 대통령은 몇 번이나 질문의 취지를 되묻기도 했다. 압권인 장면은 마지막 부분에 나왔다. 한 기자가 “문 대통령은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에 곤란을 겪지 않는지, 또 (문 대통령이) 당신(트럼프 대통령)에 이걸 멈추게 해달라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논의하길 원하는지”를 질문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대통령이 아니었으면 지금 북한과 전쟁 중일 것이다. 고맙다”며 일방적으로 기자회견을 끝내버렸다. 기자회견 내내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을 향해선 눈길을 거의 주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통역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답변을 주의 깊게 들은 것과 대조적이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어 통역이 바뀐 점도 눈길을 끌었다. 기존의 이연향 미 국무부 통역국장 대신 또 다른 한국계인 제이미 라이트가 통역으로 활동했다.
박현준 기자 hjunpar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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