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조사 내내 범행을 부인하던 ‘화성연쇄살인사건’ 유력 용의자 이춘재(56)가 무려 14건의 살인 등 화성살인 외에 추가범행까지 자백한 이유에 대해 “이춘재가 수재형이어서 일부러 경찰을 골탕 먹일 수도 있다. 경찰과 일종의 ‘카드게임’을 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여성 프로파일러가 이춘재 인터뷰… ‘오버액션’으로 과시욕 끌어내”
프로파일러인 배상훈 전 서울경찰청 범죄심리분석관은 3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프로파일러들이 인터뷰 전) 이춘재를 독방에 뒀다. 이런 사이코패스들은 굉장히 떠벌리기를 좋아하는, 말을 하기 좋아하는 과시욕이 있는데 말을 못하게 하면 정신적으로 힘들어진다”며 “그럴 때 프로파일러들은 ‘너의 구원자는 나밖에 없다’는 식의 방식을 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이코패스들은 크게 권위에 추종하는 쪽과 권위에 저항하는 쪽 두 가지로 나뉜다. 권위에 추종하는 쪽은 제복을 입고 면담에 들어간다. 경찰 제복을 입고, 계급장 반짝반짝하게 (해서)”라며 “(이춘재처럼) 성적살인범 같은 경우는 여자 프로파일러, 특히 치마를 입히고 또는 향수를 뿌리게 해 앞에 있는 프로파일러 면담자가 일종에 자신의 피해자인 것 같은 방식으로 (인터뷰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해당 기법은 FBI가 그린리버 살인사건에서 개리 리지웨이에게 적용했던 방식이라고도 덧붙였다.
배 프로파일러는 이씨의 추가 범죄 자백도 일종의 과시욕에서 비롯됐을 것으로 보았다. 그는 “프로파일러들은 연극을 많이 한다. 과잉되게. (범죄자 앞에서) ‘오버액션’도 한다”며 이씨에게 ‘대단하다’, ‘정말로 당신이 그렇게 한 것인가’라는 반응도 일부러 보였다고 했다. 이 때문에 이씨가 범죄 상황을 그림까지 그리며 자기 주도적으로 털어놓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수재인 이춘재가 경찰 골탕 먹일 수도… 주도권 싸움 중”
이춘재가 상당히 머리가 좋은 편이라 이씨의 자백을 모두 믿었다간 경찰이 곤란해질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배 프로파일러는 “이춘재는 수재형이다. 수재형이 아니면 그런 범죄는 하기 어렵다”며 큰 틀에서는 진실이 나왔지만 이씨의 자백을 100% 믿을 순 없다고 지적했다.
배 프로파일러는 “(이씨가 일부러) 경찰을 골탕먹일 수도 있다. 강간사건 30건을 자기가 했다고 했는데 만약 이게 (경찰이 이미) 해결한 거면 경찰이 엉뚱한 범인을 잡은 것”이라며 “주도권을 자기가 가지고 오려는 거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경찰에게 ‘내가 말하면 곤란해질 텐데?’라고 하는 거다. 자기도 카드를 주는 거고 ‘너도 카드 가져가’라며 일종의 카드게임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배 프로파일러는 “경찰이 발표하지 않은 포인트가 있다”며 “범인과 경찰만이 아는 포인트, 그걸 확인한다. 언론에 공개하지 않은 것들이 꼭 존재한다”고 설명하며 경찰이 추가 검증 작업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한편 이씨는 지난 1일 화성연쇄살인사건 9건을 포함해 모두 14건의 살인과 30여건의 강간·강간미수 등 강력범죄를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경찰은 화성사건을 제외한 5건의 자세한 발생 장소와 일시 등은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밝히지 않았다. 다만, 이들 사건 중 화성 일대에서 3건, 충북 청주에서 2건이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씨가 오래전 기억에 의존해 자백한 만큼 당시 수사자료 등에 대한 검토를 통해 자백의 신빙성을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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