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지난 16일 기준금리를 연 1.5%에서 1.25%로 0.25%포인트 전격 인하했다. 역대 최저수준이자 지난 7월에 이은 올해 두 번째 금리 인하다. 계속되는 경기침체와 대내외 불확실성을 감안한 것으로 경기 회복을 추동하자는 취지로 보인다.
최근 우리 경제는 장기화하는 안팎의 악재로 어두운 터널에 갇혀 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에 따른 글로벌 경기 둔화에 일본의 무역 보복까지 겹치면서 경제의 등뼈인 수출이 급감하고 성장률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수출 감소는 10개월째 지속하고 있다. 이는 주요 국가 대부분이 겪는 현실이지만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엔 부담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국제 주요 경제 전망기관들의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 전망치는 1.9%로, 이미 2.0% 아래로 내려갔다. 물론 주요 선진국과 비교할 때 한국의 성장률만 추락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지만, 성장 감속이 가파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하함으로써 과도한 가계 부채 부담 완화나 투자·소비 심리 개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지만, 그동안 금리가 높아 기업이 투자와 고용을 꺼린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얼마나 약발이 먹힐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다만 한가지 우려되는 것은 저금리가 자칫 부동산 과열을 부채질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라며 당국은 이 부분을 각별히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 16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p) 인하함에 따라 시중은행의 금리도 줄줄이 내릴 것으로 보인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날 통화정책방향 결정 회의를 열어 기준금리를 연 1.50%에서 1.25%로 인하했다. 이에 따라 시중 은행들도 예·적금 등 수신금리 인하를 검토하고 있다. 인하 폭과 시기는 대체로 시장 상황과 예대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대출 금리도 시차를 두고 덩달아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
가계 대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은 크게 변동금리와 고정금리(5년 고정·혼합형) 두 가지다.
주담대 변동금리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는 정기예금, 정기적금, 상호부금, 주택 부금 등 국내 은행이 자금을 조달한 수신상품의 금리를 가중평균한 값이다. 지난 7월에 도입된 신 잔액 기준 코픽스는 여기에 다양한 기타 예수금과 차입금, 결제성 자금 등을 추가해 산출한다.
기준금리 인하는 시중은행의 수신금리 하락으로 이어지고, 이는 코픽스 조정으로 연결되면서 주담대 변동금리 역시 낮아지게 된다. 코픽스는 매달 15일 공시돼 약 한 달간의 시차가 있다.
일 또는 주 단위로 바뀌는 주담대 고정금리는 주로 금융채 5년물(AAA등급) 금리를 기준으로 삼는데, 금융채 역시 조정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미 시장에선 한은이 이달에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라고 점쳐왔기 왔기 때문에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시장에 선반영된 부분이 있다. 당장 대출금리가 크게 움직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저금리로 예·적금의 매력은 더욱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예금 이자로 노후를 보내는 은퇴 세대의 경우 향후 수입 축소가 예상된다.
◆'역대급 저금리' 예·적금 매력 ↓
당국의 이번 금리인하를 놓고 경기부양 효과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는 모습이다.
이미 장기화된 저금리로 시장에 돈이 흘러넘치고 있지만, 소비와 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부동산 쪽으로만 쏠리는 '돈맥경화' 현상이 지속되고 있어서다. 금리를 아무리 내려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유동성 함정'에 이미 빠져들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은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의 통화유통속도는 2분기 기준 0.69로, 1분기(0.69)에 이어 역대 최저 수준을 이어갔다. 화폐유통속도는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시중 통화량을 나타내는 광의통화(M2)로 나눈 것으로, 통화 한 단위가 일정기간 동안 각종 재화와 서비스를 구입하는 데에 얼마나 유통됐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통화승수도 2분기 15.6으로 역대 최저 수준으로 내려갔다. 통화승수는 시중통화량을 중앙은행이 공급하는 현금 통화인 본원통화로 나눈 값이다. 한은이 본원통화 1원을 공급할 때 창출되는 통화량을 나타내는 것으로 돈이 얼마나 잘 도는지를 보여준다. 요구불예금 회전율도 올 1월 20.7회에서 7월 19.8회로 하락했다. 예금 회전율이 떨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통장에 돈이 묶여 있다는 얘기다.
시중에 돈이 잘 돌지 않는 현상이 계속되면서 금리인하가 경기부양 효과로 이어질지에 대한 의문점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기준금리 인하의 거시적 실효성 점검'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경제의 금리 파급경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난 2년간 지속된 고강도 부동산 시장 안정화 정책 등으로 금리인하 자산효과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과 같이 디플레이션 우려가 큰 상황에서는 통화정책 효과가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앞으로 물가가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확산되면 가계는 지갑을 닫고, 기업은 투자를 줄이는 등 실물경제가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유동성 함정에 깊숙이 빠져들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으로 되돌려놓은 한은의 통화정책 여력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한은이 경기가 더 나빠져 금리를 내린다 해도 더 이상 내릴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히게 되고, 그럴 경우 유동성 함정에서 벗어나기가 점점 힘들어질 수 밖에 없다. 통화정책과 맞물려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준금리 인하, 서울·수도권 주요지역 집값 상승 부채질?
한편 부동산 전문가들은 최근 잇따른 기준금리 인하가 서울과 수도권 인기지역을 중심으로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휘발유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고 뉴스1이 전했다.
일반적으로 금리가 내려가면 대출에 수반되는 이자부담이 줄어 부동산에 대한 투자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경기침체로 주식 등 부동산을 대체할 투자수단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투자수요는 더욱 부동산으로 쏠리고 있다.
인기지역에는 대출규제가 강하게 시행되고 있으나 규제에 영향을 받지 않는 부유층이나 자산가들은 부동산 투자에 대한 선호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신혼부부 등의 실수요자들도 중소형 아파트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
서울 아파트값은 정부의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확대 시행 경고에도 불구하고, 연일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상한제가 시행되면 주택 공급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에 새 아파트 희소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한국감정원 조사에서 서울 아파트값은 이달 첫 주 0.08% 올라 1년 만에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가 0.11% 올라 상승을 주도했고, 강북 대표 지역인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의 상승폭도 평균을 웃돈다. 상승세는 15주 연속 이어지고 있다.
다만 연말까지 정부의 서울 지역 주택 거래에 대한 모니터링이 강력하게 시행되는 만큼 금리 인하에도 거래량은 소강상태를 나타낼 수 있으며, 특정 과열 지역에 대해 정부가 추가 대책을 내놓을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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