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사람 간의 신뢰가 매우 낮은 나라에 속한다. 다인종 사회인 미국보다 신뢰도가 낮다. 2010년 세계 70여개 국가를 상대로 “일반적으로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더니 긍정적인 대답이 26%에 그쳤다고 한다. 국민 4명 중 3명이 서로 불신하고 있다는 뜻이다.
같은 핏줄을 지닌 동족끼리 왜 서로 못 믿는 것일까? 그것은 사람들이 거짓말을 많이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전에 동네 주민센터 게시판에 부착된 공개수배자 명단을 본 적이 있다. 살인, 살인미수, 존속폭행치사, 강도상해, 성폭력, 사기, 알선수재 등으로 죄목들이 실로 다양했다. 그런데 20명의 범죄자 중에서 사기범은 검거자 1명을 포함해 13명이나 됐다. 범죄자 셋 중 둘은 사기범이라는 얘기다. 우리나라에는 거짓말과 관련된 범죄가 정말 많다. 법정 등에서 거짓말을 하는 위증죄와 다른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무고죄의 경우 1인당 범죄건수 기준으로 이웃 일본보다 수백 배나 많다고 한다. 보험사기 총액이 미국보다 100배 많다는 통계도 있다.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가 거짓말에 너무 관대한 탓이다. 속담에도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이 있다. 어떤 수단이든 목적만 이루면 된다는 의미이다. 또 누군가 속아서 억울한 일을 겪으면 “속는 놈이 바보”라고 되레 면박당하기 일쑤다. 이렇게 국민들이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다보니 공직자들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거기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이다.
거짓말은 나라를 좀먹는 암적 존재이다. 사람들이 서로 믿지 못하는 풍토에선 법과 도덕이 제대로 설 수 없기 때문이다. 평생 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도산 안창호 선생은 백성들이 너무 거짓말을 많이 한다고 개탄했다. 그는 일제를 몰아내기 전에 거짓말을 몰아내는 일이 더 화급하다고 생각했다. 조선인들이 영국인 수준의 도덕성을 갖춘다면 일제가 조선을 더 이상 지배할 수 없으며, 거짓으로 서로 불신하는 한 독립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도산이 “거짓이여, 너는 내 나라를 죽인 원수로구나. 내 죽어도 평생 거짓말을 아니 하리라.” 하고 맹세한 이유이다.
우리나라가 반듯한 나라가 되는 길은 다른 곳에 있지 않다. 일찍이 도산이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말라. 꿈에라도 성실을 잃었거든 통회(痛悔)하라”고 외쳤듯이 이 땅에서 거짓부터 몰아내는 일이다. 이제 우리 속담도 바뀌어야 한다. 모로 서울을 가선 안 된다. 서울을 가더라도 똑바로 가야 한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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