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리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의 철수를 결정한 이후 시리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급격히 퇴조하고 그 공백을 러시아가 메우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정상회담을 통해 시리아의 쿠르드족 민병대를 터키가 설정한 ‘안전지대’ 밖으로 축출하고, 안전지대에서 러시아와 터키군이 합동으로 순찰하기로 합의했다. 러시아는 시리아 내전의 중재자로 나서 러시아와 연대하고 있는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정부가 관할하는 지역을 확대하고, 아사드 정권이 통치권을 강화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이날 보도했다.
시리아 내전 사태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미국이 지정학적인 최대 피해자가 되고, 러시아와 푸틴 대통령이 승자가 됐다고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언론이 평가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 남부 휴양도시 소치에서 열린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뒤 언론 브리핑에서 “150시간 이내에 테러세력인 YPG(쿠르드 민병대)와 중화기들은 (터키·시리아 국경에서) 30㎞ 밖으로 철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터키군과 러시아군이 쿠르드 민병대의 철수를 확인하기 위해 시리아·터키 국경으로부터 폭 10㎞에 걸친 터키의 군사작전구역에서 합동 순찰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와 터키는 이날 정상회담 직후 발표한 양해각서에서 터키의 시리아 내 군사작전인 ‘평화의 샘’ 작전구역 이외의 지역에는 러시아 군사경찰 부대와 시리아 국경수비대가 투입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와 터키는 이런 합의사항 이행을 감독하고 검증할 공동기구를 만들기로 했다. 러시아 군사경찰은 23일 시리아 북부 알레포주 만비즈의 시리아군 전초기지들에 대해 순찰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NYT는 “러시아와 터키 간 합의가 이행되면 쿠르드족은 이달 초까지도 유지해 왔던 자치지구에서 앞으로 6일 이내에 30km 밖으로 쫓겨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쿠르드 민병대 세력이 없는 안전지대를 확보하는 등 자신이 원하는 거의 모든 것을 다 얻게 된다”고 강조했다. 미치 매코널 미국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중진 의원들과 함께 트럼프 대통령의 시리아 미군 철수에 반대하는 결의안을 발의했다고 CNN이 이날 보도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보냈던 서한이 곧장 버려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고 22일 아사히신문이 전했다.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무장관은 20일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터키는 진지한 국가”라면서 “이런 편지가 갈 곳은 어디일까. 쓰레기통이다”라고 말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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