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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으로 변한 임진강… 마을엔 썩은 냄새 진동” [밀착취재]

입력 : 2019-11-12 19:38:08 수정 : 2019-11-12 20: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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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침출수 유출’ 연천 가보니/ 매립 못한 돼지사체 4~5m나 쌓여/ 주민들 “악취로 머리 아플 지경”/ 피 물든 도로엔 석회 가루 뿌려/ “ASF 밀어붙이기 방역이 화 자초”
쌓아둔 돼지 사체에서 흘러나온 핏물이 빗물과 함께 유입되면서 강물이 붉게 변했다. 연천임진강시민네트워크 제공

“내 새끼 같은 돼지들을 마구잡이로 살처분해 마음이 찢어졌는데, 이제는 청정지역 물조차 돼지 핏물로 오염됐습니다.”

12일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돼지 살처분·매몰 작업으로 침출수가 임진강 지천으로 흘러든 경기 연천군 중면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의 돼지농장에서 만난 농장주 A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ASF로 돼지 수만 마리가 한꺼번에 살처분돼 매몰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며 “엄청난 양의 사체를 제때 처리하지 못해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민통선 초소 일대에서는 돼지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민통선 안쪽 700m 떨어진 옛 군부대 터에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살처분 돼지들 때문이다. 연천군에서는 지난달 12일부터 정부 방침에 따라 감염 여부를 불문하고 지역 내 돼지 18만5000마리 전체를 동시에 사들여 살처분하고 있다.

12일 경기 연천군 마거리 인근에서 돼지 매몰작업을 위해 사체를 가득 실은 트럭들이 대기하고 있다. 송동근 기자

살처분된 사체는 25t 트럭에 실려 수시로 민통선 내 군부대 부지에 마련된 매립지로 옮겨지고 있다. 이날 오후 죽은 돼지를 가득 실은 트럭이 끊임없이 민통선 안으로 수시로 드나들었다. 도로가 트럭에서 흘러내린 피로 붉게 물들 정도였다. 도로 위 흔적을 지우고자 방역 당국 관계자가 흰 석회 가루를 뿌리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매몰지에서는 돼지 사체가 4~5m 높이로 쌓인 가운데 포클레인이 분주히 땅을 파고 방역복을 입은 관계자들이 돼지를 땅에 묻었다. 마을 주민 B씨는 “트럭 100대는 넘게 들락거린 거 같다. 흘러내린 피가 도로를 빨갛게 물들여 기가 막힌다”며 “하천 주변과 온 마을에 썩은 냄새와 피비린내가 진동해 머리가 아플 지경”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경기도 연천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에 따른 살처분 돼지에서 침출수가 유출된 것과 관련해 정부가 12일 뒤늦게 현지 점검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 매몰지는 상수원인 임진강으로부터는 약 16㎞ 떨어져 있다. 전날 인근 소하천을 점검한 결과 침출수 추가 유출은 없었다. 사진은 연천군 유출 돼지 침출수 제거 작업 모습.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날 “긴급행동지침(SOP)대로 한다면 침출수가 발생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맞다”며 “농식품부·환경부·지자체 합동 점검반을 구성해 ASF 발생 및 인근 101개 매몰지에 대한 일제 점검을 벌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야생멧돼지에서 ASF가 발생하는 상황이다 보니 신속하게 농가 돼지를 살처분해야 했다”고 해명했다.

 

12일 살처분된 돼지 침출수가 임진강 지천으로 흘러든 사고가 발생한 경기도 연천에서 매몰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송동근 기자

정부 부처의 ‘밀어붙이기식’ 방역 조치가 이번 사태를 불렀다는 비판이 나온다. 건국대 정승헌 교수(축산학)는 “정부는 급해서 그랬다고 하는데, 예방적 살처분에서 무슨 시급성을 따지며 행정구역상으로 대상을 정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정 교수는 “상수원 보호·폐기물(동물 사체) 관리 주체인 환경부도 이번 사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며 “방역 당국은 일정표나 실적 위주로 업무를 처리하기보다 좀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역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연천=송동근 기자, 송민섭 기자 sd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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