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지닌 여러 문제 중 가장 심각한 것이 출산율 저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출산율 저하의 가장 큰 원인은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비혼주의가 팽배해지고,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풍조가 확산되기 때문이다. 여성의 경우 결혼과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이 가장 큰 두려움으로 작용한다.
영화 ‘82년생 김지영(감독 김도영)’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영화는 조남주 작가가 쓴 원작소설보다 다소 긍정적인 결말과 남편 대현(공유)의 이해도 측면에서 훨씬 나은 상황으로 그려진다. 그럼에도 회사를 그만둔 30대 김지영(정유미)의 독박육아와 가사노동이라는 재생산과정이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말하는 ‘해리성주체장애’(DID)라는 정신병을 앓게 한다. 혹자는 여성 대다수가 그렇게 살아왔는데 유별나게 정신병을 앓느냐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동안 여성들은 자신이 정신병을 앓을 정도로 큰 스트레스를 받고, 사는지도 모른 체 참아왔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한국의 전업주부가 겪는 여러 스트레스를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드러냈다는 점이 돋보인다. ‘맘충’(육아 전담 엄마를 비하해 이르는 말)이라는 이름으로 타자화되기도 하며, 남편보다 벌이가 못하면서 남편을 육아휴직하게 해 앞길을 막느냐는 시어머니의 비난에도 시달려야 한다. 영화는 딸 지영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하고 아파하는 친정 엄마 미숙(김미경)의 삶도 되비춘다. 오빠 뒷바라지에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 했던 그녀의 삶에 지영은 깊숙하게 들어간다. 지영이 시어머니한테 “사돈!”이라고 부르면서 친정 엄마 입장에서 보는 딸의 고통을 말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순간 놀라움으로 돌변한 집안 분위기를 수습하려는 대현이 지영이가 아프다며 데리고 나가지만, 누구도 지영이 왜 그렇게 이상한지에 대해 이해하고자 하는 장면은 없다. 철옹성에 혼자 갇힌 것 같은 느낌으로 살아왔던 지영이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해피엔딩은 남편이 육아를 도와줌으로써 가능해진다.
남성과 여성의 입장 차이로 논란이 뜨거웠던 이 영화를 냉정하게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출산율 저하가 단순한 해법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과 결부시켜 봐야 한다. 국가 정책과 가족의 실행이 선행되지 않고서 출산율 저하 극복은 요원한 일인지 모른다.
황영미 숙명여대 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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