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퇴역한 60대 예비역 대장과 퇴역을 앞둔 50대 주임원사의 ‘우정’은 각별했다. 먼저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간 노(老)장군이 곧 군복을 벗고 새 출발을 할 부사관을 격려하고 축하해주는 모습은 이를 지켜본 모든 이들에게 진한 여운을 남겼다.
17일 미 국방부에 따르면 지난 13일(현지시간) 워싱턴 인근의 한 군부대 강당에서 열린 합동참모본부(합참) 주임원사 이·취임식에는 한국인들한테도 아주 낯익은 예비역 장성 한 명이 참석했다. 박근혜정부 시절인 2013∼2016년 주한미군 및 한·미연합사 사령관을 지낸 커티스 스캐퍼로티(63) 전 육군 대장이다.
그는 주한미군 사령관을 마치고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NATO) 최고사령관으로 옮겨 유럽에서 근무하다 올해 초 퇴역했다.
스캐퍼로티 장군이 모처럼 육군 정복을 입고 군대 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건 이날 이·취임식을 끝으로 군을 떠나는 존 웨인 트록셀(55) 합참 주임원사와의 ‘의리’ 때문이다. 스캐퍼로티 장군이 군단장이던 시절부터 지휘관 대 주임원사로 호흡을 맞춰 온 두 사람은 주한미군에서도 2년 넘게 사령관 대 주임원사로 이른바 ‘원팀’을 이뤘다. 미 언론이 두 사람의 관계를 ‘가까운 친구(close friends)’라고 부를 정도다.
2013년 10월 한국에 부임하자마자 스캐퍼로티 장군은 주임원사 교체를 단행했다. 오래 전부터 부사관들 중에서 가장 믿음을 가져 온 트록셀 원사를 주한미군 겸 한·미연합사 사령부의 새 주임원사로 불러들인 것이다.
1982년 미 육군에 입대한 트록셀 원사는 주로 기갑사단과 공정사단에서 복무해왔다. 독일, 파나마,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해외근무를 특히 많이 했다. 미군의 파나마 침공(1989), 걸프전(1991), 아프가니스탄 전쟁(2001), 이라크 전쟁(2003) 등 실제 전투의 작전 임무에도 여러 차례 투입된 베테랑 용사다.
스캐퍼로티 장군의 주한미군 사령관 임기 내내 그의 곁을 지킬 뻔했던 트록셀 원사는 2015년 12월 뜻밖의 인사명령을 받는다. 미 육해공군 및 해병대를 통틀어 부사관으로는 가장 높은 직책인 합참 주임원사에 발탁된 것이다.
조지프 던포드 당시 미 합참의장이 미군의 여러 유능한 부사관들 중에서도 트록셀 원사를 직접 고른 것으로 전해졌다. 아끼던 주임원사를 한국에서 미국으로 떠나보내는 행사를 주관한 스캐퍼로티 장군은 “트록셀 원사는 내게 꼭 필요한 조언자이자 리더인 동시에 참된 친구(true friend)였다”며 “나는 당신이 합참 주임원사로서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리라 믿으며, 주한미군 사령부를 대표해 당신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때로부터 꼭 4년이 지나 스캐퍼로티 장군은 예비역 대장으로 물러나 앉았고 트록셀 원사 역시 37년의 군생활을 곧 마감한다. 이·취임식에서 스캐퍼로티 장군은 트록셀 원사에게 미 대통령 명의의 감사장과 전역증명서, 그리고 각종 훈장 등을 전달한 뒤 옛 부하 겸 오랜 전우와 악수하며 왼손으로 어깨를 두드려 격려했다. 감개무량한 표정의 트록셀 원사는 옛 상관 겸 오랜 전우의 손을 두 손으로 꼭 붙잡은 채 한동안 놓지 못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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