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시아를 놀라게 한 베트남 축구 돌풍의 시작은 2년 전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이었다. 한국의 2002 월드컵 4강 신화 당시 코치로 기여했지만 사령탑으로는 이렇다 할 성과가 없는 박항서 감독이 약체로 알려진 베트남을 이끌고 일약 준우승한 것. 믿을 수 없는 성과에 베트남 전역이 들끓었고, 박 감독의 고국인 한국 축구팬들도 관심을 거두지 않았다. 이후 베트남 대표팀이 여러 국제경기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두며 박 감독은 한국과 베트남 양국에서 명장으로 떠올랐다. 이렇게 AFC U-23 챔피언십은 ‘박항서 매직’의 시발점이었다.
박 감독이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왔다. 베트남 U-23 대표팀을 이끌고 8일부터 열리는 26일까지 태국 방콕, 송클라, 부리람, 랑싯 등 4개 도시에서 열리는 2020년 대회에 나서는 것. 이를 위해 지난달 경남 통영에서 선수단을 이끌고 전지훈련에 매진했고, 이어 1일 결전지인 태국에 도착했다.
2년 동안의 성과를 지켜본 베트남과 한국의 축구팬들은 이번에도 기대감을 갖고 박 감독을 주시하고 있다. 베트남 대표팀의 경기력이 향상된 만큼 성적에 대한 눈높이도 훌쩍 높아졌다. 하지만, 2년 전과 달리 올해는 난도가 한층 더 높다. 이번 대회는 2020 도쿄올림픽 남자축구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을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림픽 개최국인 일본을 제외한 국가 중 3위 안에 들어야 도쿄행을 이루게 된다. 그렇기에 참가국 모두가 사활을 걸고 대회를 준비 중이다.
베트남도 전 대회 준우승국인 만큼 4강 이상의 성적으로 도쿄올림픽 티켓을 따내는 것이 목표지만 박 감독은 일단은 “예선 통과가 목표”라며 몸을 사렸다. 베트남은 이번 대회 조별리그에서 아랍에미리트(UAE), 요르단, 북한과 함께 D조에 속했다. 한국, 일본, 이란 등 아시아축구의 전통 강호들과 지난 대회에서 베트남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우즈베키스탄 등 부담스러운 상대들을 모두 피했다. 여기에 같은 조의 중동팀들을 상대로는 최근 좋은 기억이 있다. 요르단은 지난해 1월 아시안컵 16강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꺾었고, UAE도 11월 카타르월드컵 2차 예선에서 1-0으로 잡아냈다. 두 번의 승리 모두 U-23팀이 아닌 성인대표팀이 만들어냈지만 이는 고스란히 U-23팀의 사기로 연결됐다. 박 감독도 “중동팀과 많은 경기를 해봤다”면서 자신감을 내비쳤다. 대회 개최지가 태국이라 기후와 경기장 조건 등이 익숙하다는 점도 호재다.
다만, 조별예선을 넘어 4강 이상 진출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본선 토너먼트에서 만날 대부분 팀이 베트남보다 객관적 전력에서 한 수위로 평가받는 탓이다. 2년 전에는 미지의 팀인 덕분에 상대에게 예상치 못한 일격을 가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상대의 견제도 많이 받는다. 패배가 곧바로 탈락으로 연결되는 단판 토너먼트를 헤쳐나가기가 예전보다 더욱 험난해졌다. 그런 만큼, 박 감독에게는 자신을 향한 평가를 스스로 한 단계 높일 기회이기도 하다. 상대의 견제를 뚫고 또 한 번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면, 동남아시아를 넘어 아시아 전역에서 인정받는 명장으로 올라설 수 있다.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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