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우한 폐렴’(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발원지인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 체류 중인 우리 교민과 유학생을 전세기로 데려와 이들을 충남 아산과 충북 진천의 공무원교육시설들에 격리 수용하겠다고 29일 밝히면서 해당 지역에서 거센 반발이 터져나오고 있다. 이들 지역 주민들은 물론, 정치권까지 가세해 정부의 결정을 비판하고 나섰다. 일부 주민은 트랙터 등까지 동원해서 해당 시설 진입로를 막고 집회를 열었다.
우한 폐렴 확산 관련 중앙사고수습본부는 이날 관계부처 합동으로 3차 회의를 개최하고 우한에서 귀국하는 교민·유학생 700여명의 임시생활시설로 아산 소재 경찰인재개발원과 진천에 있는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2개소를 지정했다고 발표했다. 귀국 교민·유학생들은 공항에서 검사를 받고 관련 증상이 없을 경우 14일 동안 임시생활시설에서 지내게 된다. 이 기간 동안 1인 1실을 쓰며 외부 출입이나 면회 등은 금지된다. 해당 시설들에는 의료진이 상시 배치되며, 생활물품도 제공된다. 김갑립 보건복지부 차관은 “각 시설의 수용능력과 인근 지역 의료시설의 위치, 공항에서 시설까지의 이동거리, 지역안배 등을 고려해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해당 시설들이 있는 아산과 진천에서는 비판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우선 혁신도시인 진천에서는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이 일제히 “공무원인재개발원은 수용지로 부적절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진천군은 공무원인재개발원 반경 1㎞ 내에 6285가구, 1만7237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어린이집과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등 교육시설들이 있다고 강조한다. 송기섭 진천군수는 이날 정부 발표 전부터 진천이 수용지로 결정됐다는 언론 보도가 잇따르자 기자회견을 열어 “(전날 언급된 충남) 천안에서 반발하니까 진천으로 변경하면 주민들이 선뜻 수용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진천군의원들도 “충북도민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반발했다.
진천·음성·증평을 지역구로 둔 자유한국당 경대수 의원은 “정부가 현지 실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격리 시설을 결정하려 한다”며 “주민들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도록 격리시설을 변경하라”고 요구했다. 학부모회와 주민자치위원회 등도 연이어 기자회견을 열어 “(진천) 충북혁신도시 내 10세 미만 아동 비율은 15%로, 전국 평균 8%에 비해 월등히 많다”며 “의료시설도 없고 어린아이가 많은 혁신도시에 고위험군을 격리 수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일부 진천 주민들은 트랙터로 인재개발원 정문을 봉쇄하고 집회를 열기도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우한 교민들의 진천 수용 계획을 철회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아산에서도 반발이 거세다. 아산 주민들도 트랙터와 지게차 등을 동원해 경찰인재개발원 진입로를 봉쇄했다. 이들은 트랙터 등을 치워달라는 경찰 요구에도 시위를 강행했다. 오세현 아산시장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려 “국가적인 위기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을 극복하기 위해 힘을 합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아산시민의 안전대책이 먼저 해결돼야 하며 합리적인 이유도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정부는 전날 충남 천안에 있는 우정공무원교육원과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을 우한 교민 수용지로 정하고 공식 발표할 계획이었으나 천안 주민들의 거센 항의로 계획을 번복하고 다른 지역을 물색했다. 그러나 새로 지정된 아산과 진천까지 모두 충청권인 탓에 “정부가 충청도민을 우습게 본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아산에 사는 직장인 최모(29)씨는 “(정부가 우한 교민 수용지로 정한) 세 곳 다 충청지역에 있는 게 우연은 아닌 것 같다”며 “굳이 공항에서 몇 시간 걸려 충청까지 와야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고, 충청을 무시하는 처사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온라인 공간 곳곳에서도 비슷한 의견이 잇따르고 있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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