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10년에 걸쳐 식기세트 디자인한 덴마크 천재 건축가

관련이슈 디지털기획

입력 : 2020-02-04 15:00:00 수정 : 2020-02-05 13:23:49

인쇄 메일 url 공유 - +

‘그릇’은 먹어야 사는 인간의 오랜 도구다. 빗살무늬·민무늬 토기를 만들고나서야 인류는 비로소 먹거리를 저장하는 여유속에 문명을 이뤄나갈 수 있었다. 그때부터 이어져 온 그릇의 역사에 수많은 아이디어와 새로운 시도가 더해졌는데 이번엔 천재 건축가가 나섰다. 덴마크 출신 비야케 잉겔스가 그 주인공이다. 덴마크 미술아카데미와 스페인 바르셀로나 건축학교 등에서 건축을 공부한 비야케 잉겔스는 이후 지속 가능한 개발 원칙과 대담하고 독창적인 시도로 세계 건축계에 명성을 쌓았다. 덴마크 외레스타드 주택 단지가 초기 대표작이며 요즘은 미국 캘리포니아 구글 신사옥(토마스 헤더 윅 공동 설계)와 뉴욕 제 2세계 무역 센터를 지은데 이어 일본 도요타가 공장을 폐쇄한 자리에 지을 신도시 설계까지 맡았다.

 

이처럼 바쁜 비야케 잉겔스는 역시 덴마크의 세계적 식기업체 로얄코펜하겐 의뢰로 10년에 걸쳐 그릇을 디자인했다. 머그잔·차주전자·물병과 접시 2개, ‘하이브리드볼’로 명명된 손잡이가 달린 그릇 1개를 포함한 그릇 3개 등 총 9종으로 구성된 ‘하우(HAV)’시리즈를 자신이 속한 디자인 그룹 ‘키비시’와 함께 디자인한 것.

 

세계일보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비야케 잉겔스는 “디너웨어 디자인 과정은 건축 과정과 많은 부분에서 비슷하다”면서도 “도자기를 만들어내는 것에 고층빌딩을 짓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들었다. 사실 이번처럼 어려운 작업을 해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다음은 비야케 잉겔스와 일문일답.

 

-세계에서 가장 바쁜 건축가로 손꼽히는데 어떻게 그릇 디자인에 참여하게 됐는가. 건축가로서 이번 작업은 어떤 의미를 지녔는가. 

 

“시작은 2009년 로얄코펜하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닐스 바스트룹의 제안이었다. 닐스와 여러 번 미팅을 진행하며 내가 함께한 디자인 그룹 ‘키비시’와 로얄코펜하겐의 협업을 시작하게 됐다.

 

디너웨어 디자인 과정은 건축 과정과 많은 부분에서 비슷하다. 헤드폰이나 선글라스, 디너웨어, 집을 디자인하는 데에는 모두 완성하기 전까지 수많은 구조들을 이해하고 결합시켜야 한다. 실제로 도자기를 만들어내는데 고층 빌딩을 짓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들었다. 물질성에 있어서도 공통점이 있다. 예를 들면 타일은 떨어뜨렸을 때 깨지지만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지속되는 것처럼 도자기도 깨지기 쉬운 재료이지만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고 굉장히 오래간다. 실험적으로 건물 외관이 도자기로 된 집을 지어본 적이 있다. 도자기는 자연적 질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완벽함을 갖춘 정말 좋은 소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우’개발·출시에는 무려 10년이 걸렸다.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무엇이며 디자인에서 가장 고민하고 주안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미래는 과거에서 비롯되기에 우리는 로얄코펜하겐이 기존에 이루어놓은 재료에서 작업한 후 이를 더 새로운 방향으로 끌어내기를 원했다. 특히 이 프로젝트를 10년간 하게 된 것은 ‘소재’ 때문이었다. 매우 흥미로운 점인데 도자기는 대조적인 것들의 집합체다. 우선, 도자기는 표면이 굉장히 견고해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고 쉽게 때가 묻지 않는다. 불에서 구워져 나오는 동안 유약으로 더해진 질감과 살아있는 텍스쳐가 도자기의 깊이를 좌우한다. 대다수의 제품들이 하나 혹은 둘의 소재로 이루어진 것에 반해, 도자기는 그 자체로 유기적이고 다양한 질감과 완벽함을 담아낸 소재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번처럼 어려운 작업을 해본 적이 없었다. 아이디어와 도자기의 만남은 굉장히 도전을 불러일으켰다. 많은 작업 중 우리가 간단하다고 생각했던 아이디어도 도자기라는 소재의 특성과 독특하고 타협하지 않는 수공예로 제품을 만든다는 점 때문에 개발이 굉장히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릇’은 가장 실생활에 밀접하면서 기능 역시 뚜렷하다. 오랜동안 디자인에 큰 변화가 없었던 제품인데 ‘하이브리드볼’은 그런 전통을 깨는 새로운 형태다. ‘하우’의 ‘카라페’와 티주전자 역시 특이한 디자인인데 특유의 기능성과 미학은 무엇인가.

 

“처음부터 전통적 디너웨어를 보다 더 심플하게 만드는 데에 중점을 뒀다. 더욱 기능에 충실하고 모던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몇 가지는 비대칭적인 형태로 좀 더 특별한 특성을 구현했다. 단순한 것을 고수하고, 재료 자체가 가진 저항과 에너지를 가지고 작업하니 매우 독창적인 형태가 만들어졌다. 다른 제품들은 중요한 요소만 남기고 뼈대에 가깝게 커팅하여 만들었고, 되도록 불필요한 장식들은 없앴다. 그러나 동시에 각각의 개성을 뚜렷하게 지닌 하이브리드 볼, 티팟, 카라페 제품을 통해 명확하게 특성을 전달하고자 했다. 이러한 아이템들은 매우 개별적이고 눈에 띄면서, 전체 안에서 함께 호흡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도자기를 만들어내는 것에 고층빌딩을 짓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들었다. 이번처럼 힘든 작업은 처음이었다.” 10년에 걸쳐 식기 세트를 디자인한 덴마크 천재 건축가 비야케 잉겔스.

전체적으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사용자가 기능적인 부분과 미학적인 요소를 동시에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생각했다. ‘하우’는 사용하면서 장식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손에 제품을 쥐고 쓰면서 직접 느낄 수 있다. 여기에는 비언어적 소통이라 할 수 있는 형태가 있고, 패턴은 사용자가 자연스럽게 제품을 붙잡을 위치와 가깝게 디자인되었다. 매우 비유적이고 은유적이기도 한 직관적인 제품의 의사소통 단계에 흥미로운 점이 있다. 이런 식으로, 나는 기능과 장식이 함께 녹아들 수 있다고 믿는다.”

 

-‘단 9종의 구성으로 완벽한 테이블을 완성한다’가 개발 목표였다. 현대인의 식단과 그 미래, 또 나라별 식문화에 대해서도 고민을 했는가.

 

“우리는 ‘하우’가 50가지의 구성이 되길 원치 않았다. 대신에 모든 제품이 다양한 목적으로 쓰일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냈다. 예를 들면 그릇(볼)은 아침에도 사용할 수 있지만, 손님이 방문했을 때 대접하는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다. 지속적인 제품을 만들기 위해 많은 생각을 했다. 많은 가짓수가 필요 없이 더 적게 만들어도 많이 이용할 수 있는 더 나은 소재의 좋은 제품 말이다.

 

각국의 식문화를 감안했다기 보다는 사실, 우리 스스로를 위한 것을 만드는데 집중했다. ‘내가 나를 위해 고를 만한 것’ 말이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고 한다면, 그다지 큰 차이가 없는 무언가를 만드는데 그치게 되기 마련이다. ‘하우’는 특징이 뚜렷하고 개성이 있기 때문에 흥미롭게도 과거와 미래를 잇는 중간 지점에 자리잡고 있다. 우리는 이 포지셔닝이 하우로 하여금 시대를 초월하게 만들고 그 안의 더 많은 것들을 발견하게 하는 보편적인 우아함을 제공하길 바란다. 확실히 ‘미니멀리스틱’한 디자인이 아니고, 그렇다고 또 바로크나 역사적인 디자인도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젊은이와 노년층, 전통과 아방가르드 모두가 하우의 디자인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사진 제공 로얄코펜하겐, 비아케 잉겔스의 설계그룹 BIG 홈페이지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VVS 지우 '해맑은 미소'
  • VVS 지우 '해맑은 미소'
  • 김지연 '청순 볼하트'
  • 공효진 '봄 여신'
  • 나연 '사랑스러운 꽃받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