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국제사회의 대북 인도적 지원 흐름에 올라타야 할 때입니다. 남북 사업은 북한이 받을 준비가 됐을 때 하는 게 훨씬 효과적입니다.”
스웨덴 싱크탱크 안보개발정책연구소(ISDP) 산하 스톡홀름 코리아센터 이상수 센터장은 방한 중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 한 카페에서 진행된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조언했다. 스톡홀름 코리아센터는 2018년 한국국제교류재단(KF) 지원을 받아 북유럽 첫 한반도 정세 연구기관으로 출범했다.
스웨덴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립국으로 국제 중재에 역사가 깊다. 지난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전에도, 후에도 스톡홀름에서 북·미 실무협상이 열렸고 스웨덴 정부의 중재가 있었다. 이같은 배경을 가진 스웨덴에서 한반도 문제를 연구하는 이 센터장은 남·북·미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시각으로 현 상황을 진단했다.
이 센터장은 “올해 초 유엔에서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당분간 북·미 대화 재개가 어려워졌고 북한 내부 경제적 여건은 더 나빠지고 있으며 현지에 나가 있는 유엔 전문기구도 제재에 발이 묶여 제대로 일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도주의적 지원에는 문을 열자’는 공감대가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정부가 더 늦기 전에 이 흐름에 동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별관광 등 남북 협력 사업을 현 시점에서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은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 센터장은 “중국이 공공연히 북한을 뒷받침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북한이 대남 협력을 그렇게까지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제재를 풀지 않는 한 한국의 운신의 폭이 제한된다는 것을 북한도 알고 있다. 이 센터장은 “아이디어를 갖고 기회를 봐야 하지만, 비핵화 협상이 어느 정도 가시권에 들어올 때까지 절대 서둘러선 안 된다”며 “받을 사람이 준비가 안 돼 있는데 줄 사람이 서두르면 기회가 왔을 때 쓸 카드를 잃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 센터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우려로 북한이 국경을 걸어잠그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 스웨덴도, 어떤 나라도 다자대화 등을 통해 북한을 끌어내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올해는 인도주의적 지원이 대북 접근의 핵심 열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크리스마스 선물’ 등으로 위협했지만 올 초 아직 이렇다 할 도발이 일어나지 않은 것을 유엔 내부에서 나름대로 평가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소개했다. 이달 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는 세계식량계획(WFP) 등 3개 기구가 신청한 대북제재 면제를 승인했다. 이 센터장은 “유럽 각 정부나 기관이 인도주의적 지원을 고려하면서 최근 저희 센터에도 조언을 구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정부는 아직 이 흐름에 동참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KF와 인도주의적 지원에 대한 연구를 협업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 센터장은 비핵화, 인권, 인도주의적 지원을 유럽의 3대 대북정책으로 짚었다. 이 센터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은 북한 인권문제에 거의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며 “최근 유의미한 인권 지적은 대부분 유럽에서 나온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런 점에서 유럽의 대북 정책은 비판적 관여”라고 강조했다. 비핵화와 인권문제에는 철저하지만, 인도적 지원은 병행하는 것이 유럽 대북정책의 전통이라는 것이다.
이 센터장은 올해 상반기 한·미 연합훈련이 진행된 이후를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명분을 찾고 있는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여름 북한을 다녀온 그는 북한의 관광 사업 준비는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주 협력 대상이 중국이어서 코로나19 사태는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 센터장은 “하노이 이후 북·미의 신뢰가 많이 깨졌고 북한은 안전보장, 즉 연합훈련 중단이나 전략무기 철수를 협상의 시작 조건으로 설정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그런 점에서 스톡홀름 실무협상은 처음부터 어려웠던 협상”이라고 진단했다. 스톡홀름 협상이 결렬된 이후에도 스웨덴의 중재 노력이 없지 않았지만, 협상의 조건 자체가 올라갔다는 것이다. 이 센터장은 “북한의 핵포기 가능성이 없다고 보지 않는다”면서도 “그 과정 자체는 매우 어려워진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홍주형 기자 jh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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