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두고 신천지 압수수색 여부가 또 다른 갈등의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압수수색을 해야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드러내고 있고, 박원순 서울시장 등 여권 인사들도 여기에 합류했다. 반면 검찰은 “방역대책에 집중하고, 강제수사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보건당국도 “협조가 필요한 신천지의 음지화를 우려해 검찰의 강제수사엔 신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선 만약 검찰이 압수수색을 통해 신천지 교인들의 명단을 확보해도, 이를 보건당국에 넘겨주긴 힘들 것이라고 지적한다. 법리적으로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증거물을 법적 근거도 없이 외부(보건당국)에 넘겨줄 경우, 자칫 공무상 비밀누설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에 법조계에선 일부 여권 인사들을 향해 “코로나19 확산을 두고 신천지 압수수색을 정쟁화하려는 시도를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추미애 “신천지 압수수색해야”… 검찰·중대본 “방역대책에 방해, 신중해야“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신천지에 대한 압수수색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추 장관은 전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국민 86% 이상이 압수수색의 필요성을 요구하고 있다”며 “공중보건, 공공의 안녕·질서를 위협할 수 있는 국민 건강의 위협, 이런 긴급 사태가 전국적으로 발생할 우려가 있어서 거기에 대한 전파 차단에 국가기관 모두 다 합심해서 대응해야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법무부 장관이 특정 사건에 대해 압수수색 등 수사지휘를 해도 되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지금의 코로나19는 전례가 없었던 감염병”이라며 “여기에 대한 비상한 대책이 필요하고 보수적으로 전례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너무나 소극적인 행정”이라고도 강조했다.
반면 검찰은 신천지에 대한 압수수색에 조심스러워하는 반응이다. 자칫 신천지의 음지화를 일으켜 보건당국의 방역대책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구지검은 전날 대구지방경찰청이 신청한 대구 남구 신천지 대구교회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반려했다. 지난 2일에도 대구지검은 경찰이 신청한 압수수색 영장을 반려했다. 당시 대구지검은 영장 반려 사유로 “교인 명단 누락 등이 역학조사와 방역활동을 방해한 고의가 있었는지 불분명하다”고 명시했다.
보건당국도 신천지에 대한 압수수색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지난 2일 ‘신천지 강제 수사’와 관련해 “강압적 조치는 방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김강립 중대본 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차관)이 당시 브리핑을 통해 “정부의 강압적인 조치들로 인해 신천지 신자들이 음성적으로 숨거나 (밝혀야 할 내용을) 밝히지 않는 움직임이 확산될 경우 오히려 방역에 있어 긍정적이지 않은 부분도 나타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검찰은 중대본의 입장을 받아들여 압수수색을 유보했다.
그러나 중대본은 여권에서 압수수색 필요성을 강조하자 다시 “검찰의 협조를 부탁한다”는 기존 입장과 다른 취지로 해석되는 내용의 공문을 대검찰청에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일각에선 여권의 압박으로 중대본이 공개적으로 밝힌 기존의 ‘신중’ 입장과 180도 다르게 입장을 바꾼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법조계 “검찰, 압수수색해도 증거물 보건당국에 제출 못할 듯”
다만 법조계에선 검찰이 신천지를 압수수색한다고 해도 그 자료를 방역대책에 활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법조계 관계자는 “압수수색은 증거물 확보를 위한 것”이라며 “그 획득물을 법적 근거 없이 보건당국 등 외부로 유출하면 공무상 비밀누설죄이자 개인정보법 위반에 해당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검찰은 압수수색이 아닌 중대본이 합법적으로 명단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분위기로 전해졌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도 “정치권에서 말하는 압수수색이 방역범죄에 대한 압수수색일 경우, 검찰도 이미 보건당국의 방역을 방해하지 않는 전제로 엄정한 수사를 밝혔다”며 “그렇지 않다면 방역판을 깬 채 신천지에 대한 ‘마녀사냥’에 동참해달라는 이야기로 밖에 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정부가 이날 경기도 과천 소재 신천지교회 본부에서 진행한 행정조사에 대검찰청의 포렌식팀도 지원한만큼 명단 압수수색 효과는 이미 달성됐다는 지적이다. 대검 포렌식팀은 신천지 본부 자료를 복구·분석해 신도·시설 현황이 삭제되거나 누락됐는지 여부 등에 대한 검증을 벌일 예정이다.
◆추 장관이 든 ‘국민 86% 압수수색 찬성’ 여론조사 적절성 의문도
추 장관이 전날 국회에서 거론한 여론조사를 두고 적절성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 당시 추 장관이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국민 86% 이상이 압수수색 필요성을 요구하고 있다”고 언급한 여론조사의 질문이 부적절했다는 것이다.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지난달 28일 전국 18세 이상 성인 5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신천지 신도 명단 압수수색에 대한 찬성이 86.2%, 반대가 6.6%, 모름·무응답이 7.2%였다. 해당 여론조사에서 질문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정부가 신천지 측으로부터 받은 신도 명단의 신뢰성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와 관련된 다음 두 주장 중 어디에 좀 더 공감하십니까?”였다.
해당 질문에 대한 보기는 △믿을 수 없는 명단이니 압수수색해야 한다 △믿을 수 있는 명단이니 압수수색은 과도하다 △잘 모르겠다 등 3가지 답변으로만 구성됐다. ‘믿을수는 없지만 압수수색은 하지 말아야 한다’와 ‘믿을수 있으나 압수수색은 해야한다’는 입장은 보기로 제시된 답변 항목에서 빠져있다.
이에 일각에선 신천지가 제공한 신도 명단의 신뢰성에 대한 판단이 이미 질문에 담겨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 총괄조정관도 2일 브리핑에서 ‘신천지 측이 제공한 교인 명단과 지방자치단체가 확보한 명단 사이에 차이가 난다는 지적이 있다’는 질문에 “우리가 계속 확인하고 있는데 기준의 차이 같은 게 있어서 그렇지 지자체가 확인한 명단이 신천지 측이 (정부에) 제공한 정보에서 크게 벗어나는 사례는 없는 것으로 정리가 돼가고 있다”고 밝혔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수식어 없이 압수수색 찬반을 묻거나 명단 신뢰 여부를 물었어야 했다”며 “질문 보기의 구성이 이상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