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16일 기준금리를 1.25%에서 0.75%로 0.5%포인트 전격 인하했다. 국내 기준금리가 0%대로 들어서는 것은 사상 처음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유행) 충격으로 국내외 경제 상황이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심각하다는 판단에 따른 조처로 풀이된다.
앞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15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제로(0)금리 수준으로 전격 인하했고 다른 나라도 줄줄이 제로금리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한은은 이날 오후 4시30분 금융통화위원회 임시 회의를 열어 기준금리 인하를 결정했다. 한은이 임시 금통위를 열어 금리를 내린 것은 9·11테러 직후인 2001년 9월(0.5%포인트)과 금융위기 때인 2008년 10월(0.75%포인트)에 이어 12년 만이다. 0.75% 기준금리는 17일부터 적용된다. 한국 경제는 기준금리 0%대의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게 됐다.
한은은 “최근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면서 글로벌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심화했다”며 “그 영향으로 국내외 금융시장에서 주가·환율 등 주요 가격변수의 변동성이 크게 증대하고 국제유가가 폭락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에 금통위는 통화정책을 완화해 금융시장 변동성을 완화하고 성장과 물가에 대한 파급 영향을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기준금리 인하 이유를 밝혔다.
금통위는 이날 금리인하 조치 외에 금융중개지원대출 금리를 현재 연 0.50~0.75%에서 연 0.25%로 인하하는 유동성 공급 추가 조치를 내놨다. 또 향후 금융기관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것을 대비해 환매조건부매매(RP) 대상증권에 은행채를 추가하기로 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임시 금통위 뒤 인터넷 생중계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2월 2.1%로 발표했던 올해 성장률 전망치가 더 낮아질 가능성이 커졌다”고 밝혔다.
미 연준은 기준금리를 기존 1.00∼1.25%에서 0.00∼0.25%로 1%포인트 인하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미국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2008년부터 12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7년 동안 유지했던 제로금리 정책으로 되돌아갔다. 연준은 지난 3일 기준금리를 기존 1.50∼1.75%에서 1.00∼1.25%로 0.5%포인트 내렸다가 17일 시작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앞두고 다시 1%포인트 내림으로써 불과 2주일 사이에 1.5%포인트를 인하하는 초강수를 던졌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제를 살리기 위한 가장 극적인 처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연준은 또 유동성 공급 확대를 위해 7000억달러 규모의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을 매입하기로 했다.
연준과 함께 주요국 중앙은행은 금리 인하와 유동성 확대를 위한 공동 대응책을 마련했다. 연준과 유럽중앙은행(ECB), 캐나다은행, 영국의 영란은행, 일본은행, 스위스중앙은행 등 6개 중앙은행은 기존 달러 스와프 협정을 통해 달러 유동성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들 중앙은행은 스와프 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하고 기존의 일주일 단위인 스와프 오퍼레이션에 부가적으로 84일 만기 오퍼레이션을 제공함으로써 달러 대출을 쉽게 하고 대출 기한을 늘리기로 했다.
김희원 기자,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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