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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시선] ‘n번방’은 음란물 아닌 성착취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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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3-26 22:46:53 수정 : 2020-03-26 23: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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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시장으로 진출한 성매매 / 아동 성폭력 뿌리뽑아야

오프라인 세상은 죽었다. 모든 세상일이 온라인 공간 속에서만 움직이고 있다. 직장들은 재택근무로, 수업은 온라인강의로 대체되고 있다. 의식주 해결 역시 모두 손가락만 까딱하면 택배로 해결된다. 그러다 보니 남는 시간 동안 각종 멀티미디어를 통한 온라인 오락이 빛을 발하고 있다. 오프라인 영화관 대신 스트리밍 서비스로 영화를 보고 ‘책’ 대신 e북이 넘쳐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기존의 인터넷 오락물인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이외에도 모든 문화상품이 손바닥 위의 스마트폰으로 몰려 들어오고 있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격리가 이어지자 한국심리학회마저도 지난주부터 온라인 상담을 시작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용자라면 누구나 얼굴도 모르는 전문상담사를 사이버공간에서 만나 라포 형성(상대방의 친밀감)이나 눈 마주침 한 번 없이 상담이 가능하다. 이렇다 보니 가장 전통적 산업인 성매매 역시 온라인 시장으로 진출했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

‘n번방 사건’은 텔레그램이라는 독일 SNS를 사용해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불법으로 유통한 사건이다. 이렇게 음란물이라고 지칭을 하는 순간 우리는 성매매를 불법이라고 여기지 않듯이, n번방 역시 상업적으로 제작된 음란물의 식상한 문제 정도로만 취급한다.

그러나 현실은 매우 다르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본인의 개인정보를 불법적으로 탈취당함으로써 스스로 음란물 제작에 협조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마치 보이스피싱처럼 각종 유인, 현혹, 협박을 통해 피해자들을 낚싯바늘에 걸린 먹잇감으로 만드는 것이다. 불법적으로 획득한 영상물들은 인터넷이라는 거대 바닷속에서 영원히 사고 팔리게 된다. 처음에는 단순히 예쁘다는 칭찬만으로 혹은 푼돈을 벌어보고자 하는 목적으로 또는 연예인을 시켜준다는 제안에 현혹되어 자신의 사진이나 개인정보들을 보냈던 것이지만, 결국에는 핸드폰에 저장된 모든 정보를 피싱기술 등을 동원해 모두 빼내어 피해자들을 현대판 ‘노예’로 만드는 것이다.

물론 피해자 중에는 성인들도 있다. 하지만 더욱 처참한 지경에 이르는 사람들은 사리 분별력이 미숙한 아동청소년들이다. 사소한 사진 한두 장 혹은 자극적인 대화 한두 마디가 가지고 올 끔찍한 결말을 상상도 하지 못하는 아이들, 그들이 최대 먹잇감이 되는 것이다. 아주 어리게는 초등학생부터 중학생들이 아주 심각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잔혹한 사이코패스 성범죄자들은 으슥한 골목에만 출몰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망을 통해 안방이든 그 어디든 아이들의 목을 죌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아이들을 유인하여 획득한 음란동영상은 인터넷에서 아주 비싼 값에 팔린다. 해외 소아성애자들도 한국 아동음란물에 심취한다. 영미법국가의 엄격한 규준 때문에 제작은 꿈도 못꾸는 소아성애자들이 인터넷 강국인 바로 우리나라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아동음란물에 목을 맨다.

최근 정부에서는 이런 사정을 고려하여 아동청소년음란물을 ‘성착취물’이라고 새롭게 정의하고 동영상 공유를 비롯한 디지털성범죄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발표했다. 음란물이라고 지칭하는 대신 ‘성착취물’이라고 부르겠다는 취지는 아주 올바른 문제의식이라고 판단된다. 유인, 현혹, 협박당하여 범죄에 연루되는 과정은 범죄수익을 함께 나누는 공범이 되어가는 과정이 아니라 피해자가 되는 경로이기 때문이다.

유엔 아동권리협약에서는 ‘모든 형태의 성적 착취와 성적 학대로부터 아동을 보호할 의무’를 명시했다. 아동을 상업적 목적의 성매매에 이용하는 행위뿐 아니라 아동을 성적인 시청각 이미지 제작에 활용하는 행위까지 모두 ‘성착취’라고 규정한다. 영미법 국가의 경우 아동 성착취물을 보기만 하는 것도 범죄이며 의제강간 연령 미만의 아이들과 채팅만 해도 처벌받는다.

늦게나마 우리나라도 18세 미만 아동의 성보호에 관한 유엔의 권고를 따르기로 했다는 발표는 고무적이다. 사이버 안전을 도모할 수 있는 조직을 경찰에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계획도 시의적절하다. 아동을 향한 사이버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경찰의 함정수사를 허용하자는 야당 당수의 공언도 설득력 있어 보인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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