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를 비롯한 여성들의 성착취물을 공유하는 텔레그램 ‘n번방 사건’과 관련해 제2의 n번방으로 불리는 대화방을 운영하며 여중생 등의 성착취물을 제작·배포한 일당에게 중형이 선고됐다. 이 가운데 ‘로리대장태범’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한 주범은 아직 10대인 탓에 소년법상 유기징역형의 법정최고형을 선고받았지만 징역 장기 10년에 그쳤다.
강원 춘천지법 형사2부(부장판사 진원두)는 5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음란물제작·배포 등) 등 혐의로 기소된 로리대장태범 배모(19)군에게 징역 장기 10년·단기 5년을 선고했다. 소년법에 따르면 범행을 저지른 미성년자에겐 장기와 단기로 나눠 형기의 상·하한을 둔 부정기형을 선고할 수 있다. 단기형을 채우면 교정당국의 평가를 받고 조기에 출소할 수 있다.
배군의 공범인 닉네임 ‘슬픈고양이’ 류모(20)씨에겐 징역 7년을, 또 다른 공범인 20대 김모씨에겐 징역 8년형을 선고했다. 이들은 제2 n번방과 관련해 기소된 5명 중 주범 격 인물들이다.
재판부는 또 이들에게 10년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등과 장애인 복지시설 취업제한 등을 명령했다. 배군에게는 1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명령도 내렸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저지른 범행은 심각하고 지속적인 피해를 발생시킬 수 있는 중대한 범죄”라며 “갈수록 교묘해지는 아동·청소년 착취 음란물 관련 범죄를 막고, 아동·청소년을 보호해야 할 사회적 필요성이 매우 크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특히 주범인 배군에 대해 재판부는 “범행을 계획하고 공범 모집·관리와 피해자 협박 등 범행 전 과정을 주관했으며, 범행 과정 중 피해자가 고통을 호소함에도 집요하게 범행을 계속하는 등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류씨는 김씨와 함께 피싱 사이트 보안 등을 담당함으로써 범행에 중대하게 기여했다”며 “피고인들의 범행이 피싱 사이트를 이용한 정보 탈취가 이뤄져야 실행될 수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하면 피해자 협박 행위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귀책을 가볍게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날 녹색 수의를 입고 법정에 출석한 배군과 류씨는 머리를 푹 숙인 채 양형 이유 등을 들었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28일 열린 이 사건 결심 공판에서 배군에게 소년법상 유기 징역형의 법정최고형인 징역 장기 10년·단기 5년을, 류씨에게는 징역 8년을 구형한 바 있. 당시 배군과 류씨는 최후진술에서 “피해자들에게 정말 죄송하다”면서 “이번 기회에 양심과 도덕을 길러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배군 등은 지난해 11월 중순부터 12월 중순까지 피싱 사이트를 통해 유인한 여중생 등 피해자 3명을 협박, 성착취 영상물 등 76개를 제작해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유포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n번방 창시자인 ‘갓갓’ 문형욱(24)이 잠적한 이후 제2의 n번방을 만들어 운영하기로 하는 등 ‘프로젝트 n’이라는 명칭으로 범행을 모의한 것으로 조사됐다. 배군과 공범들은 각자의 전문 분야에 따라 서로 역할을 나눠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피해자 26명의 트위터 계정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탈취해 타인의 정보를 불법으로 수집하기도 했다.
제2 n번방 사건에 연루된 일부 공범은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29차례에 걸쳐 여성의 치마 속과 신체 등을 몰래 촬영해 이를 텔레그램 대화방에 게시·유포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재판에 앞서 ‘디지털성폭력대응 강원미투행동연대’ 회원들이 춘천지법 앞에서 피켓을 들고 텔레그램 n번방 성착취물 유포자 등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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