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찰의 가혹행위에 희생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유족과 인권단체들은 8일(현지시간) 미국에서 발생한 인종차별과 경찰폭력 사건을 조사해달라고 유엔에 촉구했다. 미 정치권에서는 경찰 개혁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플로이드의 아들 퀸시 메이슨 플로이드와 동생 필로니즈 플로이드는 이날 미국시민자유연합(ACLU) 등 66개국 656개 인권단체와 함께 유엔인권이사회(UNHRC) 47개 회원국에 서한을 발송해 긴급회의 소집과 조사를 요청했다.
이들은 서한에서 “플로이드 사망 사건은 미국 경찰과 백인 자경단이 비무장 흑인을 불법적으로 살해한 일련의 사건 중 하나”라며 “미국 경찰의 흑인 살해와 과도한 무력 사용은 국제인권조약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유족을 대리하는 벤 크럼프 변호사는 “미국은 흑인의 생명권을 박탈해온 오랜 관행을 갖고 있지만, 정부는 경찰의 책임을 묻는 데 실패했다”며 유엔의 적극적인 개입을 촉구했다.
민주당은 이날 경찰 폭력과 인종 차별을 막기 위한 법안을 발표, ‘경찰 개혁’을 둘러싼 정치권 논쟁에 불을 붙였다. 134쪽 분량의 법안에는 경찰의 폭력 등 비위 행위에 대해 면책특권을 제한하고, 피해자들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10일에 개최되는 하원 법사위의 법안 청문회에는 플로이드의 동생이 증인으로 나선다. 미국시장협의회(USCM)도 경찰 폭력과 인종 차별 문제를 다룰 새로운 실무 작업단을 발족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에 이어 이날도 트위터를 통해 “급진적인 좌파 민주당은 경찰 예산을 끊어버리고 경찰을 해체하려고 한다”며 민주당을 공격했고, 공화당 소속 시장들도 거들었다. 최근 플로이드 시위에서 등장한 ‘경찰예산 끊어라’(Defund the police)는 구호를 바이든 전 부통령과 연결시키면서 정치 쟁점화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바이든 전 부통령은 이날 CBS방송 인터뷰에서 경찰 개혁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경찰 예산 끊기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날 텍사스주 휴스턴 ‘파운틴 오브 프레이즈’(찬양의 분수) 교회에서는 플로이드의 영면을 기원하는 마지막 추도식이 열려 수천명의 시민이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지난 10년간 경찰과 백인 자경단 등의 폭력에 희생된 에릭 가너, 마이클 브라운, 아머드 아버리, 트레이본 마틴 등의 유족들도 함께했다. 플로이드의 동생은 흑인 희생자들 이름을 거명하면서 “우리는 정의를 실현할 것”이라고 울먹였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1시간여 동안 플로이드 유족을 만나 애도의 뜻을 전했고,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도 플로이드의 관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플로이드는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태어났지만, 46년 생애 대부분을 휴스턴에서 보냈다. 휴스턴 고교 재학시절 풋볼팀과 농구팀의 스타 선수로 활약했다. 장례식은 유족과 일부 초청객이 참석한 가운데 9일 휴스턴에서 비공개로 진행된다.
한편, 미네소타주 헤너핀카운티 지방법원은 이날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눌러 숨지게 한 전 미니애폴리스 경찰관 데릭 쇼빈에 대한 첫 공판에서 125만달러(약 14억9000만원)의 보석금을 책정했다.
워싱턴=정재영 특파원 sisleyj@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