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최근 남한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고 군사행동을 기정사실화하는 등 대남 압박을 강화하는 것은 대미관계에서 비롯한 불만을 표출하는 것이라고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이 분석했다.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경찰의 가혹행위로 인한 흑인 사망 시위 등이 잇따르면서 국내 이슈에 매몰된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해 ‘과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바라고 있지만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대선 이후까지 내다보고 당분간 협상 지렛대 확보를 위한 크고작은 대남 도발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다.
북한 주재 초대 영국 대리대사를 지낸 제임스 호어 박사는 15일(현지시간)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최근 대남 군사적 도발을 시사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발언은 미국에 대한 불만을 한국에 표출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호어 박사는 “대북전단이 미치는 범위와 영향력에 비해 북한이 쓴 수사의 수위가 지나치게 높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며 “미국의 관심을 끌어야 하는데 지나치게 맹렬하게 공격하고 싶지 않으니 한국을 공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미관계에 아직 희망을 갖고, 11월 대선 등 국내 문제에 집중하고 있는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해 한국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웨덴 안보개발정책연구소(ISDP) 이상수 한국센터장도 “미국을 자극하지 않고 한국을 이용해 미국을 다시 끌어들일 전략이 필요하게 된 것 같다”며 미 대선 이후 대미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군사도발에 나서려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북한은 미국에 직접적 위협이 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보다 남한을 겨냥한 도발이 이 같은 전략적 목표에 도움이 될 것으로 여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라몬 파체코 파르도 벨기에 브뤼셀자유대학 유럽학연구소 한국석좌도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에 더 영향력을 행사해 남북사업을 위한 제재 면제를 받아내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진단했다.
북한이 미 대선 이후를 내다보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핵특사는 이날 ‘국제위기그룹’(ICG)이 주최한 화상세미나에서 “미 대선이 5개월도 안 남은 상황에서 북한이 핵협상을 재개할 열의를 보이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도 북한을 상대로 새로운 외교적 시도를 하는 것보다 도발을 막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갈루치 전 특사는 특히 북·미 정상이 11월 미 대선 전에 만나는 것은 나쁜 생각이라고 반대입장을 밝혔다. 글린 데이비스 전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미 대선 전후에 북한이 도발하는 것은 과거에도 그랬듯이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가도에 걸림돌이 될 ICBM 발사보다 대남 도발을 감행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원하고 있기 때문에 도발수위를 조절할 것”이라며 “북한의 잇따른 강경 발언들은 ‘정치적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한국을 창피주고 한·미동맹의 균열을 심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힐 전 차관보는 또 “지난 2주 동안 북한은 문재인정부를 직접 겨냥하면서 한국과 미국이 얼마나 멀어질 수 있는지 등 한·미동맹을 시험하고 있다”며 “최근 방위비 분담금 인상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집착 등으로 한·미는 북한의 시험에 잘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이 과거보다 약해진 한·미동맹의 상태에 대해 만족하고 있을 것”이라며 “현시점에 미국은 한국과의 동맹을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워싱턴=정재영 특파원 sisley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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