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사회가 처한 사회경제적 조건에서 기본소득의 장·단점을 고려했을 때 기본소득이 반드시 필요한가에 대한 근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 주최로 16일 국회에서 열린 기본소득 도입 관련 토론회 발제문 중 한 대목이다. 기조발제자인 최한수 경북대 교수(경제통상학과)는 기본소득이 △일자리 등 사회안전망 확보 △재정적 실현 가능성 △빈부 격차 완화 △불완전 노동에 대한 고용보험 △경기 부양 효과 등 5개 측면에서 현행 선별적 복지제도에 비해 효과가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월 30만원 주기 위해 연 180조원 필요
최 교수에 따르면 기본소득은 전 국민에게 현금으로 지급한다는 특성 때문에 재정부담 정도가 매우 큰 ‘고비용 제도’이다. 국민 모두에게 월 10만원만 기본소득을 주더라도 매년 60조원의 예산이 들어간다. 최 교수는 증세 없이 아동수당, 생계급여, 기초연금 등 복지 관련 현금급여를 기본소득으로 대체하면 1인당 월 1만3000∼2만3000원만 지급 가능하다고 추산했다.
금융소득이나 불로소득, 토지·디지털 정보 등 ‘부자 증세’도 기본소득 재원으로 기능하기 힘들다. 2018년 기준으로 상속증여세나 국토보유세, 금융소득 종합과세 등을 모두 합쳐도 18조원에 불과하다. 기본소득이 월 3만원에 불과하다.
증세가 불가피한데 인상폭은 가파르다. 최 교수는 2017년 기준 18.8%인 조세부담률(국내총생산에서 국세·지방세가 차지하는 비중)을 3.7%포인트 올려야 기본소득을 월 10만원 지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월 3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려면 조세부담률을 유럽연합(EU) 평균(25.4%)보다 높은 28.8%로, 월 50만원의 경우엔 복지선진국인 스웨덴(34.7%)보다 높은 37.1%까지 올려야 한다.
최 교수는 “기본소득을 위해서는 대규모 증세, 그것도 기존 소득세, 법인세, 소비세 인상이 불가피하다”며 “월 30만원의 기본소득이 이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의 사회후생의 증가를 가져올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일각의 증세 요구는 노령화에 따른 복지지출의 재정여력을 담당하기 위한 것으로, 기본소득 도입을 위해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저소득층·실직자가 받는 돈 대폭 줄어”
기본소득이 빈곤층에 대한 최소소득을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다. 최 교수는 연 155만원, 294만원, 433만원, 572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한다고 가정했을 때 소득분위 1∼2분위 가구의 가처분소득은 오히려 지급 전보다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는 “기본소득은 빈곤층의 생활수준 개선이나 저소득층 소득보전에 부합하는 제도는 아니다”고 평가했다.
기본소득은 전 국민에게 일정 정도의 현금을 쥐어준다는 점에서 변형된 ‘장기실업보험’ 성격을 갖고 있다. 현재 고용보험은 실직한 근로자에게 월 75만원 수준의 실업급여를 제공하는 데 비정규직이나 특수고용직, 경력단절여성, 퇴직자 등은 빠져있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보장수준 면에서 실업급여를 대체할 수 없다. 전 국민에게 월 75만원을 지급하려면 소요예산은 한해 450조원에 달한다. 최 교수는 “고용보험 측면에서 기본소득은 노동시장에 존재하는 (비정규직 등) 불완전 노동자들을 사회안전망 안으로 들어오게 만드는 장점이 있으나 지급되는 금액이 낮아 보험으로서 기능은 취약하다”고 말했다.
이는 기본소득 도입에 앞서 전 국민 고용보험 실시를 주장하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논리와 맞닿아 있다. 박 시장은 최근 페이스북에서 “24조원의 예산이 있다고 가정할 때 ‘전 국민 기본소득’은 실직자, 대기업 정규직에게 똑같이 월 5만원씩을 지급하고 ‘전 국민 고용보험’은 (200만명의 실직자에게) 월 100만원씩 지급할 수 있다”며 “무엇이 더 정의로운 일일까”라고 주장했다.

◆“기본소득의 경기부양 효과도 의문”
기본소득이 경기부양에 효과적인지도 의문이라고 최 교수는 지적했다. 그는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이나 경기도의 재난기본소득을 계기로 기본소득의 경기부양효과를 강조하는 견해가 있다”며 “하지만 같은 금액을 지급할 경우 소득분위별 한계소비성향의 차이에 의해 보편적 이전지출(기본소득)보다 선별적 이전지출(생계급여·소상공인지원금)이 경기부양에 있어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 자체가 바뀌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긴급재난지원금이 지급되기 시작한 지난 5월 11∼17일 평균소득이 상대적으로 높은 서울 서초구와 평균소득이 낮은 금천구의 소상공인 카드 매출액을 비교해보면 서초구는 전년 동기의 93% 수준인 반면 금천구는 100% 수준까지 회복했다. 최 교수는 “상대적으로 평균소득이 낮은 지역에 대한 재정지출이 더 경기부양 효과가 있다는 것”이라며 “정부의 선별지원 정책이 적어도 경기부양정책으로 효과적이라는 것을 시사한다”고 주장했다.
기본소득 논의는 4차 산업혁명에 따라 일자리가 급격하게 감소할 것이라는 사회 일각의 우려가 반영됐다. 인공지능(AI)이 대다수 일자리를 대체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AI를 보유한 1%의 이윤의 일정 부분을 정부가 ‘로봇세’ 등으로 거둬들여 노동시장 밖에 있는 99%에 기본소득 형태로 재분배하자는 ‘AI 묵시록’ 담론이 그것이다.
최 교수는 “일자리 관련 최근 통계를 살펴봤을 때 AI로 인해 한국사회에서 일자리 총량이 급격히 줄고 있다는 징후는 포착되지 않는다”며 “한 세대 내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가능성을 전제로 현재 복지제도를 재설계하는 모험을 해야할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4차 산업혁명의 파장은 대량실업 대신직무 성격의 변화에 머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기본소득 대신 현행 복지제도 강화 힘써야”
최 교수는 기본소득 논의가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불완전 노동자들의 불안과 저성장 시대 30∼40대 중위소득자들의 어려움 등으로 활발해진 측면이 있다고 봤다.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과 경기도 청년수당이 기본소득에 대한 대중적 인지도를 넓히는 사건이었다면 코로나19 이후 긴급재난지원금에 대한 경험과 미래통합당 김종인 위원장의 “빵 사먹을 물질적 자유” 언급으로 정치적 어젠다로 부상했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정치인들은 이슈 선점 차원에서 현금 지급만을 강조할 뿐 왜 그리고 어떤 기본소득인가를 말하지 않는다”며 “정부와 국회는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사회경제적 조건을 인식하고 기본소득이 제시하는 합리적 핵심을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기본소득 담론의 핵심으로 △현행 복지제도의 포용성 확대 △중위계층 근로가능연령에 대한 소득보전 정책 △4차 산업혁명에 맞는 사회시스템 재구축 등을 제시했다.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을 검토하며 육아휴직 급여와 아동수당 인상 등을 통해 중위계층 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