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68·사진) 러시아 대통령의 권력 기반을 강화하는 내용의 헌법 개정안이 1일(현지시간)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현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일 오전 개헌 국민투표 최종 개표 결과를 발표하면서 “77.92%가 찬성하고 21.27%가 반대했다”고 밝혔다. 투표율은 67.97%로 집계됐다.
지난 3월 이미 의회와 헌법재판소 승인을 받은 개헌안이 국민적 지지까지 받으면서 푸틴 대통령에게는 장기집권의 길이 활짝 열렸다. 개헌안은 대통령직 중임을 두 차례로 제한하지만, 이를 현직 대통령인 푸틴에게는 소급 적용하지 않는다. 2024년 네 번째 임기를 마치고도 6년 임기의 대통령직을 두 번 더 지낼 수 있게 된 것이다. 푸틴이 2000∼2008년(4년 연임), 2012년∼2024년(6년 연임)에 이어 대통령을 두 차례 더 맡는다면 소련 체제에서 31년간 장기집권한 이오시프 스탈린 전 서기장의 기록을 뛰어넘게 된다. 야권이 이번 개헌을 두고 푸틴을 ‘종신 대통령’으로 만들려는 시도라고 비판해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푸틴 대통령은 설령 차기 대권에 도전하지 않더라도 남은 임기 동안 레임덕 가능성을 원천 차단한 채 후계구도를 정비하면서 ‘강한 러시아’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게 됐다. 안드레이 콜레스니코프 모스크바 카네기센터 수석연구원은 워싱턴포스트에 “푸틴은 자신의 통치를 연장하고 극보수적인 이념의 지배 체계를 구축하는 일에 일반인을 공범으로 삼기 위해 국민투표를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개헌으로 헌법 133개 조항 중 46개 조항이 수정됐는데, 권력구조 개편안 외에도 보수적·전통적 가치를 담은 내용이 대거 추가됐다. 러시아 영토를 분리하는 방향의 행동과 이를 조장하는 일을 금지했고, 국내법이 국제법(국제협정)에 우선한다는 원칙이 명기됐다. 대조국전쟁(1941∼1945년 독·소 전쟁)의 역사적 진실을 지키고 참전용사들의 위업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과 동성혼 금지 원칙도 포함됐다. BBC방송이 모스크바 투표소에서 만난 개헌 찬성파들은 “크림반도 지배권을 절대 포기하지 않고 러시아의 역사적 진실을 지키기 위해 투표했다”고 말했다. 전날 푸틴이 2차 세계대전 격전지에서 한 투표 독려 대국민 연설이 러시아 국민의 애국심을 자극하는 효과를 냈다는 분석이다.
러시아의 대표적 야권 인사인 알렉세이 나발니는 개표 결과가 진정한 여론을 반영하지 못한 “커다란 거짓말”이라고 반발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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