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보유세 부담을 크게 강화한 정부의 7·10 대책으로 고가 주택을 보유한 다주택자들이 깊은 고민에 빠졌다. 종합부동산세는 물론이고 양도소득세와 취득세까지 ‘트리플’ 과세 강화로 당초 집을 팔려던 다주택자들은 당분간 주판알을 굴리며 눈치 보기에 나선 모양새다. 양도세 부담에 주택을 매각할 계획을 철회하고 가족에게 증여하는 쪽으로 반응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다주택자 충격 속 관망세
12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남 등 고가 주택이 밀집한 지역의 중개업소에는 이번 대책으로 세금 부담이 얼마나 늘어날 것인지를 묻는 문의가 줄을 잇고 있다. 보유세 부담으로 주택 매도를 염두에 둔 상담 전화도 이어지고 있다. 다만 종부세 인상분 적용 시점이 내년 6월인 데다가, 지금은 이사철이 한참 지난 여름 비수기라서 당장 집을 팔려는 것보다 적정 매도 시점을 저울질하려는 문의가 대부분이라는 게 중개업소들의 전언이다.
서울 강남역 인근의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다주택자라고 해서 다 현금부자만 있는 건 아니고, 이 주변에는 대출을 낀 집 두세 채의 월세로 대출을 갚아가면서 노후 생활비 정도를 버는 사람도 꽤 있다”며 “원래 부자인 사람은 개의치 않겠지만, 이번 대책으로 월세 받아 노후자금을 대는 노부부들은 직격탄을 맞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치동 은마아파트 주변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집주인들이 ‘무서워서 집 팔아야겠다’면서 찾아오긴 하는데 막상 얘기를 들어보면 빈말인 경우가 많다”며 “일단 종부세가 오른 만큼 거래세도 늘어났기 때문에 조금 지켜보겠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양도세 부담을 감안해 증여로 돌리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정부가 이마저도 틀어막기 위해 배우자나 자녀에게 증여할 때 내는 증여 취득세 인상 카드를 검토하자, 증여 절차를 서두르는 이들이 많다는 말도 나왔다.
집주인이 세 부담을 세입자들에게 떠넘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다주택자들이 늘어난 보유세를 충당하기 위해 전세를 반전세로 돌리거나 기존 월세의 임대료를 올리는 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고위인사들의 다주택 처분도 잇따를 전망이다. 청와대에서 주택정책을 담당하는 윤성원 국토교통비서관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 아파트(83.7㎡)와 세종시 소담동 아파트(59.9㎡) 중 세종시 아파트를 처분해 1주택자가 된다. 윤 비서관은 이미 처분 계약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비서관은 서울에서 계속 근무해 세종 아파트에 입주하지 못한 점을 고려했지만, 일각에선 결국 청와대 참모도 ‘강남의 똘똘한 한 채’를 선택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법인주택 급매, 등록임대 폐지 논란
7·10 대책으로 주택을 가진 법인이 내는 세금은 크게 늘어난다. 내년 6월부터 법인 주택에는 종부세 기본공제 6억원이 적용되지 않는다. 가격에 상관없이 주택을 가진 법인은 모두 종부세를 내고, 세부담 상한도 없다. 개인의 경우 주택 가액이 높을수록 종부세율이 올라가지만, 법인 주택은 주택 가액과 관계없이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구조다.
과거에는 개인이 절세를 목적으로 본인이 운영하는 법인에 주택을 파는 경우가 많았지만, 앞으로는 굳이 법인을 통해 주택을 보유할 필요가 없어진 셈이다. 내년 이전에 법인 주택 중 일부가 급매물로 시장에 쏟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전문위원은 “최근 법인 거래가 급증한 지역을 중심으로 매물이 한꺼번에 나올 가능성이 있다”며 “두세 명이 함께 법인을 만들어 저가 주택 갭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사례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대책으로 사실상 폐지 수순에 접어든 등록임대 제도를 둘러싼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정부는 등록임대 개편방안으로 4년짜리 단기 임대와 아파트 장기일반매입 임대를 폐지하고, 그 외 다른 유형의 주택에 대한 세제 혜택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아파트를 뺀 다세대주택, 빌라, 원룸, 오피스텔 등은 그대로 세제 혜택을 받는 것이다. 아파트와 비교해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크지 않아 갭투기 수요가 아파트에서 다세대주택과 빌라 등으로 옮겨가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부동산 임대사업특혜 축소 3법’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에 따르면, 국내 등록임대주택 160만채 중 아파트는 40만채뿐이고 120만채가 다세대주택, 빌라 등이다.
◆증세 아니라지만… 종부세 1조6500억 더 걷힌다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정부가 잇달아 내놓은 부동산 대책으로 종합부동산세가 1조6500억원 정도 더 걷힐 것으로 추산됐다. 세수 결손 상황 속에서 세수를 늘리기 위해 부동산 대책이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것일 뿐 증세 목적이 아니다”는 입장이다.
12일 정부와 여당 등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최근 당정 협의 등에서 ‘12·16 대책’, ‘6·17 대책’, ‘7·10 대책’에 포함된 종부세 세율 인상에 따른 세수 효과를 약 1조6500억원으로 추정했다.
세부적으로 12·16 대책에서 종부세 세율 조정으로 4242억원, 6·17 대책에서 법인에 대한 단일세율 적용 및 6억원 기본공제 폐지로 2448억원, 7·10 대책에서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율 추가 조정에 따라 9868억원의 세수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내년부터 다주택자뿐만 아니라 1주택 보유자의 종합부동산세율도 최대 0.3%포인트 오른다. 7·10 대책에 언급되지 않았지만 12·16 대책에 1주택자에 대해서도 종부세율을 0.1~0.3%포인트 인상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일각에서 정부가 최근 세수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관련 세제를 개편한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문재인정부 들어 지난해 처음으로 1조3000억원의 세수결손이 발생한 상황이라 그럴듯한 공감을 얻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세수를 늘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택시장 안정을 도모하고 부동산 관련 과세 형평을 맞추려는 취지”라고 펄쩍 뛴다.
종부세 납세 의무자는 전체 인구의 1% 미만이고, 전체 주택 소유자(2018년 기준 1400만명)의 약 3.6%에 불과하다. 특히 다주택자·조정대상지역을 중심으로 세 부담을 강화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더구나 정부가 의도한 대로 ‘정책 효과’가 나타나 다주택자와 법인 등이 보유한 주택을 처분하게 되면 지난해 기준 다주택자·법인을 기준으로 세수 증가분을 추산한 1조6500억원보다 실제 세수 효과가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강화된 종부세법이 내년 6월1일 시행되기 이전 다주택자와 법인의 주택 처분으로 종부세가 예상보다 감소하더라도 매매 증가로 양도소득세는 오히려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이번 7·10 대책을 통해 양도소득세까지 대폭 올린 상태다.
국세청의 ‘2019년 주택분 종부세 부과고지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종부세 총 부과세액은 전년 대비 9041억원 증가한 3조189억원이었다. 주택 부문이 9594억원으로 전년보다 5262억원 늘었고, 토지 부문은 2조595억원으로 3779억원 증가했다.
지난해 주택 부문 종부세 납세자는 전년보다 12만명 늘어난 51만명이었다. 과표 구간별(2019년 종부세 부과 기준)로 보면 3억원 이하가 인원은 34만7733명으로 가장 많았으나, 세액은 1317억원 수준이었다. 13억~50억원 이하 구간이 인원은 1만7142명이나, 세액은 2733억원으로 모든 구간을 통틀어 가장 많았다.
박세준·박현준 기자, 세종=우상규 기자 3j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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