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평창의 한국자생식물원에 설치된 ‘소녀상에 무릎 꿇고 사죄하는 조형물’이 한일 양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영원한 속죄’라는 작품명의 이 조형물은 남성이 위안부 소녀상 앞에서 무릎 꿇고 머리 숙여 사죄하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조형물 속 남성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라는 국내 한 언론 보도를 일본의 인터넷 매체들이 인용해 보도했고, 주요 언론도 29일 이같은 소식을 잇달아 전하면서 소셜미디어(SNS)에서 시작된 논란이 일본 내에서 확산하는 양상이다.
이날 일본 주요 언론들은 “논란이 한일 양국의 외교적 논란으로 치닫는다”고 전했다.
이같은 반응은 인터넷 반응을 의식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전날 오전 “사실 여부는 확인하지 않았지만 그런 것은 국제 예의상 허용되지 않는 일”이라며 “만약 보도가 사실이라면 한일 관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힌 것에서 비롯됐다.
◆‘소녀상에 무릎 꿇고 사죄하는 조형물’
일본 인터넷 매체인 데일리 신쵸는 자국 언론 보도에 대해 문제를 지적했다.
29일 이 매체는 ‘소녀상에 무릎 꿇고 사죄하는 조형물’을 두고 교도통신이 ‘아베 총리를 특정한 것은 아니다’라고 보도한 점을 ‘다른 해석을 낸다’고 지적했다.
교도통신은 ‘소녀상에 무릎 꿇고 사죄하는 조형물’ 관련 취재를 진행하며 조형물을 제작한 김창렬(72) 한국자생식물원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김 원장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처럼 “아베 총리를 특정하는 건 아니다”라며 “사과의 입장에 있는 모든 남자들을 상징한 것이다. 어쩌면 일단 소녀의 아버지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즉 “아베 총리를 특정한 건 아니다”라고 전한 게 다른 해석이란 것이다.
앞서 일본의 일부 온라인 매체들은 이러한 확인 과정 없이 조형물 속 남성이 아베 총리라고 특정했다. 교도통신 보도는 이들 매체 보도와는 분명한 차이 있다.
처음 일본 누리꾼 간의 논쟁도 이들 온라인 매체 보도가 시발점이다.
논쟁은 이른바 ‘예술적 관점에서 표현의 자유’라는 의견과 자국 총리를 형상화한 것, 소녀상을 설치한 것 등을 지적하는 의견이 갈렸다. 이 가운데 혐한 발언도 나왔다.
그 후 방송에서 소식을 이어갔는데 일본 TBS 토크쇼 ‘히루오비’ 진행자 야시로 히데키 변호사는 이날 방송에서 “설치 장소가 사유지라고 하지만 일반인이 방문 할 수 있는 식물원으로 공공성을 가지고 있다”며 “민간 시설이니 관여할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하면서 한국 정부 대응 촉구했다.
◆아베 총리 아니어도 논란
한편 ‘영원한 속죄’ 속 남성이 아베 총리가 아니어도 일본 우익 등에 의해 논란이 일었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일본 우파 측 주장 반일 단체인 정의연의 정기 수요시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여파로 중단된 가운데 소녀상이 설치됐기 때문이다.
이들 우파는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정하고 소녀상 철거를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다. 또 우파가 아니더라도 일본에서 바라보는 소녀상은 그리 좋은 이미지가 아니다.
앞서 지난해 8월 1일 일본 최대 국제예술제인 아이치 트리엔날레 ‘표현의 부자유전 그 이후’에서 소녀상이 전시됐는데 일본 정부를 비롯한 일부 시민, 우파 등의 강한 반발과 심지어 테러 예고와 협박이 나와 단 3일 만에 전시가 중단된 바 있다.
전시를 기획자들과 작가들은 “역사적 폭거”라며 강하게 반발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앞선 매체도 ‘소녀상에 무릎 꿇고 사죄하는 조형물’ 설치가 “일본인의 마음에 ‘영원한 속죄’가 아닌 ‘영원한 분노’를 새기게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일본 내부에 제기된 ‘표현의 자유’를 두고 “한 나라의 현직 총리를 조롱하는 동상이 과연 예술적일까”라고 반문하고 있다.
논란이 커지자 김 원장은 “‘아베 총리도 조형물의 남성처럼 사죄하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말한 것이 오해를 불러온 것 같다”며 “조형물은 정치적 의도가 전혀 없고 사회적인 문제가 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말을 일본의 일부 매체들이 기억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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