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이 러닝메이트로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을 선택함으로써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마이크 펜스 부통령 티켓과의 차별성을 최대한 부각했다. 공화당의 백인 남성 2인조와 달리 민주당은 흑인·인도계 여성을 부통령 후보로 내세워 텃밭인 소수 인종과 여성 표를 집중적으로 공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77세인 바이든이 대선에서 승리하면 내년 1월 20일에 78세의 나이로 미국 역사상 최고령 대통령이 된다. 해리스 의원이 올해 55세로 바이든의 구시대 후보 이미지 탈색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74세이고, 펜스 부통령은 61세여서 50대 중반인 해리스가 젊은층 유권자에게 세대교체의 메시지를 줄 수 있다.
바이든은 한때 자신이 ‘과도기’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는 곧 자신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막는 과도기적인 역할을 하고, 4년 뒤에는 연임하지 않은 채 물러날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바이든의 러닝메이트가 누가 될지 미국 정가의 관심이 집중됐던 것도 부통령 후보가 차차기 대선의 선두 주자로 나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해리스는 올해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바이든과 경합했고,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흑인 인종 차별 문제 등을 놓고 바이든에게 날 선 공격을 가하기도 했었다. 바이든 캠프는 해리스가 충성심이 떨어지고, 독자적인 정치 노선을 걸을 수도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바이든은 해리스가 여성인 데다 소수 인종 출신이어서 대선 득표전에 가장 적합한 러닝메이트로 여겼고, 해리스가 부통령 후보 선정 과정에서 줃곧 1순위 후보군에 올라 있었다.
바이든은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8년 동안 부통령으로 재임했고, 누구보다 부통령의 역할을 잘 안다. 바이든이 해리스를 낙점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역시 해리스가 필요할 때 대통령을 대행할 수 있는 최고의 적임자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미국 언론이 보도했다. 해리스는 미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캘리포니아주에서 선거로 검찰총장에 당선된 최초의 흑인 여성이고, 2016에는 캘리포니아 출신 상원의원이 됐으며 이번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들었다. 해리스는 초선 상원의원이지만 법조인 출신답게 의회 청문회 등에서 송곳 질문으로 유명했고, 민주당 대선 후보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발군의 토론 실력을 선보였다.
워싱턴 포스트(WP)는 11일(현지시간) 해리스 의원이 2016년 이후 민주당의 ‘떠오르는 스타’ 정치인으로 주목을 받아왔고, 초선이지만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는 등 탄탄한 정치 경력을 쌓아온 것이 부통령 후보로 발탁된 배경 중의 하나라고 보도했다. 해리스 의원이 공화당의 펜스 부통령과 ‘부통령 후보 텔레비전’ 토론을 할 때도 크게 선전할 것이라는 게 바이든 캠프의 기대이다.
해리스는 흑인과 여성 표 공략의 최고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바이든은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흑인 유권자에게 결정적인 빚을 졌다. 그는 아이오와, 뉴햄프셔, 네바다주 경선에서 연전연패함으로써 절체절명의 탈락 위기에 몰렸었다. 그러나 바이든은 흑인 유권자가 많은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경선에서 흑인 지지자의 압도적인 지지로 1위를 차지했고, 그 여세를 몰아 역전 드라마를 연출했다.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의 무릎에 짓눌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전국적으로 흑인 차별에 항의하는 시위가 전개된 것도 흑인 출신인 해리스의 발탁 요인으로 작용했다. 바이든이 사실상 대선 후보로 결정된 뒤 여성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흑인 지도자들은 부통령 후보로 흑인 여성을 선정하라고 바이든 캠프에 대대적인 압박을 가했다. 민주당 지지층 중에서 흑인 여성이 민주당에 가장 열정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어 해리스가 여성과 흑인 표 결집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 내 좌파 진영은 해리스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WP가 지적했다. 온건파로 분류되는 바이든이 사회주의자를 자처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민주당 경선 돌풍에서 드러난 민주당의 좌경화 바람을 등에 업는 데는 해리스가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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