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 석탈해 사당터에서 잔받침 등 제사 관련 유물이 다량 출토됐다.
3일 경주시와 신라문화유산연구원에 따르면 토함산 불국동 석탈해 사당지 유적을 긴급 발굴 조사한 결과 건물 유적과 유물을 다량발견했다.
이번 발굴조사는 문화재청 2020년 긴급발굴조사 사업 가운데 하나로 지난 9월부터 진행됐다.
삼국유사에는 680년 신라 문무왕 대에 석탈해왕 뼈로 상을 만들어 토함산에 동악신으로 모시고 국사를 지냈다고 전해지고 있다.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은 사당터와 관련된 건물터 2동과 통일신라시대 암막새, 평기와, 고려시대 명문기와, 청자, 분청사기, 철제마, 청동방울, 토제마를 발굴했다.
확인된 건물터는 고려 후기 마지막으로 중건된 건물 흔적이다.
중심 건물터는 동서 2칸, 남북 1칸으로 기반층 상부에 황갈색 점토로 대지를 반반히 고른 뒤 조성했다.
중심 건물터 서편에는 토석축으로 벽체를 만든 1칸의 부속 건물터도 확인했다.
건물터에서는 철제마(쇠로 만든 말 인형), 토제마(흙으로 만든 말 인형), 청동방울, 통일신라시대 암막새 조각, 평기와, 고려시대 명문기와, 해무리굽 청자, 상감청자, 분청사기 등이 출토됐다.
청자와 분청사기는 화로나 잔 받침 등 제사와 관련된 것이 많았다.
기와 중에 ‘癸巳年 分施主 尹山 崔字 李堅’(계사년 분시주 윤산 최자 이견) 글자가 찍힌 기와가 많이 나왔다.
이 기와는 불국사 성보박물관 부지 발굴 때도 다수 확인됐다.
시주자 중 한 명인 이견(李堅·?∼1360)은 고려 후기 무인이다.
1350년에 종2품인 지밀직자사에 임명됐고 1360년 홍건적 침입 때 함종전투에서 전사한 인물로 추정된다.
명문 기와는 고려 후기 몽골족 침입 이후 계사년(1353)에 불국사와 함께 탈해 사당도 중건했음을 추측할 수 있는 자료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동경잡기 등 지리지와 여러 문집 기록에서 탈해사당은 조선 전기까지 제사를 유지한 것으로 전한다.
사당지 주변에는 조선시대 봉수대 관련 시설이 있고 넓은 면적에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친 기와, 토기 파편이 흩어져 있다.
이 때문에 사당뿐만 아니라 군사 관련 시설이 분포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체계적 조사 및 성격 규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경주=이영균 기자 lyg02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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