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신분증 의무제시 대책 내놔
“불심 검문도 신분증 강요 안 해”
“산발감염 최소화 위한 것” 분분
‘전화 걸어 기록 남기기’ 대안도
“어르신 신분증 좀 주세요.”
지난달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 80대 남성이 음료를 주문하려 하자 종업원이 출입명부 작성법을 큰소리로 설명했다. 남성은 신분 대조를 한다는 종업원의 요구대로 주민등록증을 내밀었지만 남성은 줄곧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다중이용시설 입장 시 출입명부 작성이 일상화됐지만 신분 확인과 개인정보 수집에 대한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수기로 명부를 작성할 경우 신분증 제시를 필수로 한 것에 대해 인권침해라는 지적과 방역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이 팽팽히 맞선다.
4일 보건복지부의 시설별 방역수칙에 따르면 수도권 내 프랜차이즈형 커피전문점이나 일반음식점·휴게음식점 중 면적이 150㎡(약 45평) 이상인 사업장에서는 방문자 확인 절차가 의무다. 정부는 개인정보 유출 위험 등을 이유로 QR코드를 활용한 전자출입명부 이용을 권장하고 있지만, 2G 휴대전화를 사용하거나 전자출입명부 기록을 거부하는 경우 수기로 작성하도록 했다. 이 경우 이용자는 신분증을 제시해야 한다.
이 같은 정부 지침을 두고 과도한 통제라는 우려가 나온다. 거동이 수상한 사람에 대한 경찰의 불심검문 시에도 신분증 제시를 강제할 수 없는데 신분을 증명하지 않으면 카페나 음식점 같은 시설 이용이 제한된다는 지적이다.
중앙사고수습본부가 지난 9월 지방자치단체와 합동으로 전국 3만2226곳을 대상으로 전자·수기명부 사용 여부와 수기명부 관리실태를 점검한 결과 1만8159곳(56.3%)이 전자출입명부를 사용했고, 수기명부만 사용하는 시설도 1만3704곳(42.5%)으로 나타났다. 수기명부를 작성하는 사업장 중에서는 82%가 신분증 확인을 하고 있었다.
오영일 진보네트워크 대표는 “코로나19가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조절되는 상황에서조차 모든 시민을 상대로 기록을 남기는 것은 과도하다”며 “코로나19 대응에 성공했다는 것은 확진자 수만으로 따질 것이 아니라 경제활동과 기본권 같은 사회적 가치도 지켜져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카페나 음식점이 위험장소로 분류될 근거가 충분하다 하더라도 신분증 확인까지 하는 것은 인권침해 요소가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출입자 명부 작성이 확대되면서 이 같은 방역과 기본권 사이의 줄다리기는 계속돼 왔다. 수기로만 명부를 작성하던 초기에 허위로 명부를 작성해 역학조사에 혼란을 겪는 일이 발생하자 방역당국은 신분증을 대조하도록 보완책을 내놨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다중이용시설 내 집단감염은 ‘n차’ 감염으로 이어지기 쉽고, 허위로 명부를 작성하는 경우 추적 시간이 걸어져 확산 위험이 더 커진다”며 “신분증 대조작업은 필수적인 조치”라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다중이용시설에 입장할 때 전화번호만을 사용해 신분 확인을 최소화하는 방안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박경신 교수는 “방역을 위해서라면 연락이 가능한 전화번호만을 확보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며 “연락을 기피하는 등의 방역방해 행위가 있을 경우에만 영장을 통해 신원확인을 하면 된다”고 말했다. 실제 경기 고양시는 전화만 걸면 방문 정보가 자동으로 기록되는 ‘발신자 전화번호 출입관리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지정된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면 전화번호·방문일시 등에 대한 기록이 시청 서버에 자동으로 저장되고 4주 후 자동 삭제된다.
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