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사정을 종합할 때, 피고인 A가 주도하여 이 사건 각 사기 범행을 계획하고, 다른 피고인과 공동으로 그 실행행위를 분담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 (공모 및 실행행위 분담의 존재 여부에 대한 판단 소결론)
“다수 전세보증금 계약을 유치한 뒤 타인 명의의 부동산 매입에 사용했으므로, 계약종료 후 전세보증금을 반환할 수 없는 상황이었음이 명백하다. 다수 원룸건물의 임의경매절차가 진행되었던 점에 비춰보면, 피고인 A 등은 피해자들의 전세보증금을 받아 현금 또는 타인 명의 부동산으로 은닉할 계획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일 뿐이고, 보증금을 반환할 의사나 능력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 (피고인들이 전세보증금을 반환할 의사가 있었는지 여부에 대한 소결론)
“신의성실의 원칙상 사전에 상대방인 피해자들에게 판시 범죄사실에서 기재한 것과 같은 사정을 고지할 의무가 있었고, 피해자들이 고지를 받았다면 이 사건 전세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것으로 인정되는바, 상대방을 기망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 (피해자들에 대한 기망행위의 존부에 대한 소결론)
전주지법 군산지원 형사2단독(모성준 부장판사)는 지난 3일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 된 A(46)씨 등에 대한 재판에서 징역 13년6월을 선고하며 이같이 밝혔다. 재판부는 함께 기소된 B(31)씨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A씨에게 명의를 빌려준 C(60)씨에게는 벌금 3000만원을 각각 선고했다.
지난해 전북 익산 등지에서 원룸 임대사업을 벌이며, 총 122명에게 전세보증금 약 46억3000만원을 가로챈 사건으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A씨 등의 범행에 대한 법원 판결문은 60쪽에 달할 만큼 방대했다.
특히 피해자들이 대학생과 취업준비생 등 대체로 사회생활 경험이 부족한 점 등을 악용한 점에서 재판부는 A씨 등의 죄질을 강하게 지적했다. 피고인들의 범행을 언급하며, 양형 고려요소를 설명한 내용만 봐도 원고지 약 18매 분량인 3500여자나 된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법원이 형을 선고할 때는 피고인, 피해자, 일반인이 모두 납득할 범위 내에서 정하는 것은 시대를 초월한 법원의 사명”이라며 “피해자나 일반인이 낮은 처단형이라며 수긍할 수 없다는 의견을 제기하고, 행위자들이 더 이상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아 해당 범죄가 꾸준히 증가하는 현상이 이어진다면, 잠재적으로 범행을 계획하는 사람이 결심을 주저하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양형에 관한 실무를 변경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전제했다.
이어 “1건의 사기 범행과 수천건의 사기 범행의 법정형이 차이가 없게 되면서 오히려 추가적인 범행을 장려하는 결과를 낳게 됐다”며 “급기야 한국은 ‘OECD 사기 범죄율 1위’ 오명을 얻기에 이르렀다”고 사기 범행이 끊이지 않는 현실 상황을 개탄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3년 ‘범죄 유형별 국가 순위’를 내고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중 사기 범죄율 1위를 기록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아울러 “우리나라에서는 대학생, 취업준비생 등 상대적으로 취약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겨냥한 보이스피싱, 전세금사기 등이 창궐하고 있다”며 “조직적 사기 범행의 행위자들에게 ‘사기 치기 좋은 나라’임과 동시에 취약 계층의 사람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어렵게 되어가는 것에는 이러한 추세를 억제하지 못한 형법상의 가중주의, 세분화되지 않은 사기 관련 형벌규정과 사기 범행에 대한 양형실무에도 적잖은 원인이 있다”고 화살을 돌렸다.
그러면서 “조직적·악의적 사기 범행은 최소한 해당 사기 범행에 따른 피해 정도와 불법 크기에 비례하는 형이 선고되어야 한다”며 “자백이나 편취금의 일부 공탁으로 피고인 형량을 대폭 경감하거나 집행유예를 선고해오던 형사항소심 실무를 피의자가 범행 계획 과정 등에서 고려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피의자나 피고인이 항소심의 실무관행을 활용해 유리한 형량 받는 길을 열어두는 것 또한 더 이상 정당화될 수 없다”고 엄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끝으로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행은 사회경험이 부족해 부동산 관련 법률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사람들로부터 금액을 편취하기 위해 계획·조직적으로 진행됐다”며 “그 범행의 죄질이 극히 불량하고, 피해를 입은 사람의 수가 적지 않으며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되면서, 피고인의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는 말로 양형 이유 설명을 마쳤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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