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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초등생 유괴살해 사건 이후 학부모들이 하교 시간에 맞춰 마중 나오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유괴는 아동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흉악범죄로 분류되고, 부모의 가슴에 못을 박는 극적인 사건이라는 점에서 영화에서도 자주 다뤄지는 소재다. 그런데 과연 ‘복수는 나의 것’(감독 박찬욱)에 나오는 대사처럼 ‘착한 유괴와 나쁜 유괴’를 구분할 수 있을까? 최근 개봉한 ‘소리도 없이’(감독 홍의정) 역시 이를 화두로 삼고 있다. 낮에는 소도시를 돌아다니면서 계란을 팔고 저녁에는 범죄조직의 뒤처리인 시체 수습을 하며 살아가는 태인(유아인)과 창복(유재명)은 어떤 일에나 모두 성실하다. 범죄조직 하청일도 그들에게는 범죄에 가담한다는 생각보다는 생업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들에게 일을 주는 범죄조직 실장의 부탁을 받고 유괴된 11살 아이를 억지로 떠맡게 되지만, 다음 날 실장이 시체가 되어 버리는 바람에 졸지에 유괴범이 된다.

태인이 사는 시골집에서 유괴된 초희(문승아)와 그녀보다 더 어린 태인의 동생과 함께 마치 한가족처럼 다정하게 지낸다. 한밤중 마당에 있는 화장실에 갈 때면 초희는 태인을 화장실 앞에서 기다려 달라고 하며 심정적으로 의지한다. 초희의 부모에게 돈을 유구하기 위해 초희의 얼굴사진을 찍을 때도 초희가 즐거운 표정을 짓자, 창복이 오히려 초희에게 두려운 표정을 지어야지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그렇게 태인 일행과 잘 지내는 것 같다가도 초희는 기회를 틈타 태인의 집을 나가 도망쳐 경찰서를 찾아 헤맨다. 놀란 태인은 들판에서 초희를 발견하고 큰오빠가 막내 동생을 돌보는 것처럼 그녀를 업고 돌아온다. 태인은 초희를 집으로 보내기로 결심하고 초희의 손을 잡고 초등학교에 들어선다. 담임 선생님을 만난 초희는 같이 온 저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 선생님 곁에 바싹 붙어 귀엣말을 한다. 유괴범 잡으라고 소리치는 담임 선생님의 목소리를 통해 결국 착한 유괴는 없다고 감독은 말한다.

“상부의 지시에 따라 내 일을 했을 뿐이다”라고 2차 세계대전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의 전범이었던 오토 아돌프 아이히만은 전범재판에서 말했다. 유대인으로 홀로코스트를 겪었던 사상가 한나 아렌트는 그를 보며 ‘악의 평범성’을 천명했다. 태인이 한 짓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저질렀다고 과연 용서가 될 것인가를 영화는 질문하고 있다.

황영미 숙명여대 교수·한국영화평론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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