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군이 쓰는 무기를 개발하는 국방과학연구소(ADD) 홈페이지에 흥미로운 사진 한장이 공개됐다. 원형으로 된 표적지 한복판에 탄도미사일 한 발이 정확히 명중하는 사진이었다. 온라인에서 “가짜 사진이다” “합성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지만, 이는 실제로 이뤄진 전술지대지유도무기(KTSSM) 시험발사 결과다. 그만큼 이 미사일이 정확하게 표적을 타격한다는 의미다.
전술지대지유도무기의 실전 배치가 눈앞에 다가왔다. 방위사업청은 25일 서욱 국방부 장관 주재로 제131회 방위사업추진위원회 회의를 화상으로 열어 전술지대지유도무기 양산계획안을 의결했다. 2025년까지 3200억 원을 투입해 200여 발을 양산하게 된다.
북한군이 장사정포 발사를 시도하면 위성항법장치(GPS)를 장착한 전술지대지유도무기가 갱도를 파괴, 개전 초기에 장사정포를 무력화할 수 있다.
◆북한의 대표적 비대칭무기, 갱도 진지
북한이 휴전선 일대에 배치한 것으로 알려진 장사정포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평가할 때마다 등장하는 대표적인 비대칭 전력이다.
휴전선이 표시된 한반도 지도를 펴보자. 수도권과 가까운 개성시 판문군과 광화문까지의 거리는 40㎞ 정도에 불과하다. 탄도미사일보다 저렴하고 발사속도도 빠른 야포나 방사포를 배치하면 한강 이북 지역을 타격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심각한 경제난에 빠진 북한이 1993년 서부전선에 240㎜ 방사포를 배치한 것을 시작으로 장사정포 배치와 갱도 진지 건설을 본격화한 이유다.
갱도 진지 내부는 66㎡(20평) 안팎의 넓이로 갱도에서 포를 꺼내는 즉시 미리 구축한 포대에서 포격하고 갱도로 신속히 돌아갈 수 있다.
입구에는 10~20㎝ 두께의 철문이 설치되어 있고, 입구 주변은 수십㎝ 두께의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이 만들어져 있다. 입구 앞에는 방호벽이 있어 순항미사일 공격을 막을 수 있다. 갱도는 단순한 동굴 형태가 많지만, 서로 연결된 경우도 있으며, 입구가 2~3개인 진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갱도 진지 안에는 식량, 물, 탄약이 충분히 비축되어 있고 지휘소도 있다.
북한군은 자주포를 산의 남쪽 사면, 방사포는 북쪽 사면의 갱도 진지에 배치해왔다. 하지만 2015년 남쪽에 있던 자주포 갱도 입구를 봉쇄하고 북쪽으로 입구를 새로 뚫었다. 남쪽으로 뚫린 갱도 입구는 우리 군의 포병과 미사일로 파괴가 용이하다. 하지만 후사면인 북쪽으로 갱도 입구가 건설되면서 북한 자주포를 무력화하기가 더 어렵게 됐다.
언뜻 보면 막강해 보이는 장사정포와 갱도 진지도 취약점은 존재한다. 포격 후 갱도로 돌아가지만, 장사정포의 위치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 현대전에서 포병은 신속한 기동과 화력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한데, 장사정포와 갱도 진지는 이를 포기했다. 한미 연합군이 대포병레이더로 위치를 파악한 뒤, 갱도 진지를 부술 수 있는 무기를 투입하면 대응이 가능한 이유다.
한미 연합군이 갱도 진지를 무력화하려면 벙커 버스터를 투하하거나 무인기로 갱도 입구를 파괴해야 한다. 하지만 북한군의 강력한 저고도 방공망을 피하기가 쉽지 않다. 제압 과정에서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위험이 높아진 셈이다. 1분 1초가 중요한 장사정포 제압작전에서 약간의 작전 지연만으로도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북한 황해남도 해안과 맞닿은 서북도서 주둔 해병대는 갱도 진지에 있는 해안포를 제압하고자 이스라엘산 스파이크 미사일을 배치했다. 하지만 휴전선 일대에 포진한 갱도 진지를 효과적으로 파괴할 방법은 마땅치 않았다. 전술지대지유도무기는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했다.
◆장사정포 제압작전 선두주자 역할
전술지대지유도무기 개발이 시작된 것은 2010년 연평도 포격 직후였다. 북한 장사정포 위협에 대응하고자 이명박 정부는 ‘번개 사업’을 시작한다.
대통령 특명사업으로 진행된 ‘번개 사업’은 순항미사일급 정확도를 갖추고, 갱도 진지를 파괴할 수 있는 관통력을 보유한 전술 탄도미사일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2012년 5월 비공개 시험발사에 성공했으며. 일반 무기체계 개발 사업으로 전환됐다. 2017년 10월 국회 국방위원들을 대상으로 2발의 시험사격 장면을 공개했는데, 164㎞를 날아가 모의 표적에 명중했다.
갱도 진지를 파괴하는 관통력 등은 검증이 빠르게 이뤄졌다. 하지만 미 군용 GPS에 대한 미국 정부의 수출 승인 지연과 북한 전자전에 대비한 항재밍 문제 등으로 양산이 지연됐다. 2013년까지만 해도 2019년에는 전력화가 가능할 것으로 군은 전망했지만, 미 군용 GPS가 연합암호장비로 분류돼 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한 채 미국 정부의 대외군사판매(FMS) 절차와 동일하게 군용 GPS 도입을 추진하면 될 것으로 판단, 사업이 지연됐다.
전술지대지유도무기는 은폐된 진지에서 운용하는 고정형(배치-1)과 천무 다연장로켓 발사대를 활용하는 이동형(배치-2)로 나뉜다. 미사일과 발사관, 발사대, 방사통제소로 구성된다.
고정형은 170㎜ 자주포와 240㎜ 방사포 갱도를, 이동형은 300㎜ 방사포와 고정식 탄도미사일 진지를 공격한다. 고정형을 먼저 전력화하며, 이동형도 2020년대 중반쯤 모습을 드러낼 전망이다.
미사일 1발의 가격은 8억원. 공군 타우러스 공대지미사일 가격이 20억 원 안팎인 것을 고려하면 저렴한 값이다. 북한이 휴전선 일대에 구축한 갱도 진지들을 무력화하려면 상당한 수량의 미사일이 필요한데, 한정된 예산으로 소요량을 확보하려면 단가를 낮춰야 한다.
기존에 확보된 기술과 장비들을 최대한 활용해 비용 절감을 추구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현무 탄도미사일, 해성 대함미사일 등을 개발하면서 얻은 경험과 기술이 적용됐을 것으로 보인다.
사거리가 190㎞로 알려진 고정형은 1개의 발사대에서 수초 이내에 4발을 발사할 수 있다. 침투관통형 열압력탄을 탑재한다. 약 300㎞의 사거리를 갖는 이동형은 2발을 쏠 수 있으며, 침투관통형 열압력탄 외에 일반 고폭탄 발사도 가능하다.
열압력탄은 표적에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충격파를 이용해 표적을 파괴하고 인명을 살상하는 탄두다. 파편을 이용한 탄두보다 살상반경이 넓고, 실내에서 폭발하면 내부에 있는 사람은 충격파로 사망하고 시설들은 파괴된다. 전술지대지유도무기가 북한군 갱도 진지에 명중하면 진지 안의 포병과 화기, 탄약 등은 무용지물이 되는 셈이다.
북한군도 이런 위협을 인식하고 갱도와 벙커를 보강하고 있다. 2017년 5월 일본의 대북전문매체 아시아프레스는 “북한군이 순항미사일 등의 공격에 대비해 갱도 입구로부터 5m 앞, 갱도 문 높이보다 3m 높은 방호벽을 마대나 흙으로 구축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1개의 발사대에서 수초 이내에 전술지대지유도무기 4발을 동일한 갱도 진지로 발사하면 아무리 튼튼한 갱도 진지도 버텨내기 어렵다. 완파를 면해도 진지나 연결 통로 내부에 금이 가거나 전기, 수도, 산소 공급이 끊어져 군사적 효용성을 잃어버린다.
암반으로 구성된 산을 이용한 갱도는 매우 깊은 곳에 건설되어 있어 파괴가 쉽지 않다. 갱도 출입구를 반복해 공격, 무력화하거나 갱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특정 지역에 전술지대지유도무기를 계속 발사하면 내부 인원은 생매장당하거나 질식사한다.
육군은 개전 초기 북한 핵과 대량살상무기(WMD)를 제압하기 위한 ‘게임 체인저’ 전력으로 초정밀 고위력 미사일을 앞세우고 있다. 현무 탄도미사일과 전술지대지유도무기가 그것이다. 이를 통해 북한 전쟁지도부와 대량살상무기 시설, 장사정포 갱도 진지 등을 무력화한다.
하지만 북한이 대구경방사포와 전술지대지미사일로 평양-원산 이북 지역에서 수도권을 공격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전술지대지유도무기로는 수도권 방어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거리가 늘어난 이동형 유도무기가 배치되면 기존의 에이태킴스(ATACMS)와 더불어 북한 포병 제압 효과가 높아질 수 있지만, 이를 탐지하고 추적하는 감시정찰 능력과 정보 전달에 필요한 지휘통제 및 통신 능력 향상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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