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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 26번째 ‘야당 패싱’ 장관 된 변창흠…청문제도 또 논란 [심층기획 - 인사청문회 이대론 안 된다]

입력 : 2020-12-29 06:00:00 수정 : 2020-12-29 07: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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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 사생활 검증에만 매몰
정권 바뀌어도, 공·수만 교체돼
‘능력 검증’ 도입 취지 못 살려
與野, ‘제도 개선 TF’ 구성 합의
野, 신상털기식 문제점엔 공감
“알권리 위해 공개범위 합의를”
학계 “與독주 막을 견제장치를”
“복수후보 세우는 방법도 고려”
‘3분의2 찬성’ 미국식 참조 제안
野, 피켓 들고 “지명 철회” 외쳤지만… 28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진선미 국토교통위원장(가운데)이 항의하는 국민의힘 의원들한테 둘러싸인 채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하고 있다. 서상배 선임기자

야당이 ‘낙마 1순위’로 꼽았던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28일 결국 장관에 임명됐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 국토교통위원들이 이날 오전 회의에서 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강행 처리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오후에 곧장 임명안을 재가했다. 변 후보자의 사퇴를 요구했던 국민의힘 위원들은 표결을 거부하고 기권했다. 변 후보자는 현 정부 들어 야당 동의를 받지 않고 밀어붙인 26번째 장관급 인사다.

 

174석의 거대 여당이 ‘입법독주’에 이어 인사청문회까지 좌지우지하면서 청문제도 무용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이번 청문회 대상자였던 4명의 후보자 중 야당이 ‘하자투성이’라며 가장 극렬히 반대했던 변 후보자까지 여당 독주로 임명되면서 “이럴 거면 청문회를 왜 하는 거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앞서 민주당은 권덕철 보건복지부, 전해철 행정안전부,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도 야당이 부적격 의견을 개진했지만 청문보고서 채택을 강행한 바 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인사청문제도의 근본적 수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사청문제도를 둘러싼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청문제도가 처음 도입된 2000년 이래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여야가 위치를 바꿔가면서 야당은 반대하고, 여당은 밀어붙여온 인사청문 관행을 끊어낼 때가 됐다는 것이다. 청문회가 지나치게 사생활이나 도덕성 검증에 매몰돼 정쟁만 유발한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여야도 이 같은 문제의식에 동의하면서 지난달 박병석 국회의장 주재로 인사청문제도 개선을 위한 태스크포스(TF) 구성에 합의했다. 그러나 여야의 시각차는 여전해 의미 있는 결론을 도출해낼지는 미지수다.

 

◆또 ‘여당 독주’…‘하자투성이’ 변 결국 임명

 

문 대통령은 이날 수석·보좌관회의 후인 오후 5시17분 변 후보자와 정 후보자의 임명안을 재가했다. 두 장관의 임기는 29일부터 시작된다. 청와대는 두 장관과 이미 임기를 시작한 권 장관, 전 장관 등 신임 국무위원 임명장 수여식을 29일 오전 중에 열 예정이다. 이날 오전 변 후보자의 청문보고서 채택을 논의하고자 열린 국회 국토위에서는 제1야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의 거센 반발이 일었다. 국민의힘 국토위원들은 민주당 소속 진선미 국토위원장석으로 몰려가 피켓을 들고 “지명 철회” 등을 외쳤다. 그러나 수적 열세로 표결을 막진 못했다. 야당 간사인 국민의힘 이헌승 의원은 “(변 후보자의) 막말 파문과 새로이 드러난 성인지 감수성 결여, 준법성 결여, 일감 몰아주기 등 그동안 제기돼 왔던 의혹들이 청문회에서 오히려 증폭됐다”고 반발했다.

 

이날 오후 5시에 열린 김현미 국토부 장관의 퇴임식도 야당의 반발을 샀다.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은 “청문보고서 논의도 끝나지 않고 임명 여부도 발표하지 않은 마당에 장관 퇴임을 강행한 사례가 있느냐”고 따지며 “국회를 입법부가 아닌 통법부(通法府)로 전락시키는 조치”라고 항의했다.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항의하는 가운데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 표결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국토위는 청문보고서에서 변 후보자가 “서울주택도시공사(SH)·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을 역임하며 주택공급·도시재생 등 부동산 정책을 일선에서 담당하며 직무를 수행해 국토 분야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야당의 부적격 의견을 일부 반영해 “과거 SH 사장 재직 당시 구의역 사고 피해자나 임대주택 입주민에 대한 부적절한 발언은 국무위원으로서 요구되는 도덕성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블랙리스트 논란이나 특정 학회에 대한 수의계약은 공정성이 부족해 부적합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고 덧붙였다.

 

◆‘야당 패싱’에 도입 취지 못 살리는 청문회

 

변 후보자는 이인영 통일부 장관,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등에 이어 야당 동의 없이 임명하는 문재인정부의 26번째 장관급 인사가 됐다. 변 후보자와 이 장관, 박 국정원장 등은 그나마 청문보고서라도 채택됐으나, 20대 국회 때까진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더라도 청와대와 여당이 임명을 밀어붙인 장관급 인사가 23명에 달했다. 아직 문재인정부 임기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박근혜정부(10명)와 이명박정부(17명) 때를 훨씬 뛰어넘는 규모다. 올해 4·15 총선에서 180석에 육박하는 ‘공룡 여당’이 탄생한 뒤로는 모든 상임위원회에서 과반을 차지한 여당이 청문보고서 채택을 밀어붙이는 상황이 되풀이되면서 ‘야당 패싱’이 더욱 심해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연합뉴스

야당은 고위공직자에 대한 대통령의 임명권과 사법부 구성을 국회가 견제한다는 인사청문제도의 도입취지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국민의힘 김성원 원내수석부대표는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한 마디로 문재인정부의 ‘오기 인사’”라며 분개했다. 반면 여당은 현재의 인사청문회가 야당의 정치 공세를 위한 장(場)으로 변질됐다고 주장한다. 더불어민주당 김경만 의원은 “청문회가 야당이 여당을 공격하거나 정부의 특정 문제를 부각하기 위한 자리로 활용되고 있는 것 같다”며 “후보자의 정책적 능력이나 대안 등을 확인하는 자리가 돼야 하는데, 신상털기식으로 가다 보니 능력 있는 인물을 발굴하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도덕성 검증 비공개한다고 문제 해결될까

 

청문제도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으면서 여야는 최근 인사청문제도 개선을 위한 TF 구성에 합의했다. 문 대통령이 지난 10월 박 의장을 만나 “좋은 인재를 모시기가 쉽지 않다”며 청문회 기피 현상이 있다고 토로했고, 이후 박 의장이 여야 원내대표에게 “후보자의 도덕성 검증은 비공개로 하고 정책능력 검증은 공개하는 인사청문회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제안한 데 따른 결과다.

 

앞서 민주당 홍영표 의원과 김 의원은 지난 6월 ‘윤리청문회’와 ‘역량청문회’를 분리하고 윤리청문회를 비공개로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 개정안도 공동발의한 바 있다. 김 의원은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하면 정쟁보단 정책에 집중하는 청문회가 될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합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면서 (야당 패싱 논란 등) 문제가 조금은 줄어들지 않겠나”라고 설명했다. 야당에서도 과도한 신상털기식 청문회의 문제점에는 공감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황보승희 의원은 다만 “도덕성 검증은 비공개로 하더라도, 문제가 있는 부분은 국민에게 공개해야 한다”며 “국민의 알 권리 측면에서 공개 범위 등을 합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野에 비토권 줘야 실효성 있을 것” 제안도

 

학계에서는 인사청문제도 개편이 실효를 거두려면 여권의 일방통행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견제 장치’ 도입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하는 대신 청문보고서를 채택하지 못한 후보자는 임명하지 못하도록 법 조항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도덕성 검증 비공개와 비토권을 맞교환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여야가 행정부 감시와 견제 기능, 대통령 인사권에 대한 책임 공유라는 공감대를 형성한다면 그런 딜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복수 후보를 청문회에 세우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우리나라 인사청문제도의 뿌리 격인 미국의 ‘인준청문회’를 참조하자는 의견도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 청문제도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서 결국은 대통령과 집권여당 마음대로 인사를 할 수 있는 게 문제”라며 “(제도의 도입 취지를 살리려면) 재적의원 과반이 아닌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인준하도록 바꾸고, 인준 요소를 강화해서 여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걸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주영·곽은산·이도형 기자 buen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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