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역할 제대로 수행했는지 성찰해야
2020년 1월 20일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내 첫 확진자가 발생한 날이다. 그 이후 우리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백신으로 일말의 희망이 보이기도 하나 다시 변종 바이러스가 우리의 마음을 섬뜩하게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연말연시의 들뜬 분위기는 그저 사치로만 여겨진다. 청소년은 친구들과 선생님 얼굴도 이름도 잘 기억하지 못한 채 한 해를 보냈고 어른은 반드시 가봐야 하는 경조사에 참여하지 못한 게 몇 번인지 모른다. 대한민국의 2020년은 암울했고 한동안은 더 암울할 전망이다.
하지만 우리는 잘 버텨내고 있다. IMF 때 금 모으기처럼 빚만 갚으면 끝이 보이는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를 지속하기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의료진은 목숨을 걸고 환자를 치료하고 있고, 일반 국민은 사회적 거리 두기에 동참하며 대한민국이 수렁에 빠지지 않도록 애쓰고 있다. 2002년 이후 대한민국이라는 운명 공동체를 위해 온 국민이 이렇게 한마음으로 뭉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즐겁고 기쁜 일로 하나가 되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인간은 고난과 역경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미래로 나아가기 마련이기에 코로나19와의 전쟁은 대한민국 국민을 더욱 단단하게 할 것이다.
국민은 위대하다. 하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도 위대한가? 최근 코로나 3차 유행을 맞고 있는 한국과 일본 국민에게 코로나19 위기의 성격을 질문한 KBS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 시민들은 코로나19를 보건위기라 체감하는 비중이 높지만 우리는 경제위기로 체감하는 비중이 높다고 한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자영업, 청년고용, 실직의 위기가 심화하였다고 사람들은 답하고 있다. 물과 고난은 아래로 흐르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사회적 지위가 낮고, 소규모 자영업에 종사하며, 사회 진출을 앞두고 경험과 자원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코로나는 재앙과 다름없다. 이럴 때 바로 필요한 존재가 국가이다. 국가의 진정한 가치는 개인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사회적 위기가 도래했을 때 드러난다. 어려운 사람을 보살피고, 필요한 재원을 지원하고, 쓰러진 사람들이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 주는 게 국가의 존재 이유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기꺼이 세금을 내며 선출된 권력에 힘을 실어 준다.
그러나 지난 1년간 국가는 무엇을 하였는가? 국민과 의료진이 코로나19로 생계와 생명이 위협받으면서도 희생을 감내하고 있을 때 99%의 국민에게는 별 의미도 없는 검찰개혁에 집착해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이 진흙탕 싸움을 하며 피폐해진 국민의 마음을 더욱 고달프게 하지는 않았는가? 왜 임대주택을 찾지 않고 비싼 아파트만 찾냐며 살 곳을 잃어버린 국민을 그저 탐욕스러운 존재로 몰아붙이지 않았는가? 백신이 확보되지 않아 조석으로 관계자들이 딴 얘기를 하는 것도 모자라 다른 나라 사람들이 먼저 백신을 맞는 걸 보고 확보해도 늦지 않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국민에게 마냥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요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엄혹한 코로나 시기에 표를 얻기 위한 공항을 세우려고 수십조 예산을 쓸 궁리는 하면서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생계를 포기한 국민에게 제대로 된 사회안전망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는가?
며칠만 지나면 새해가 된다. 코로나19가 언제 종식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어쩌면 영원히 코로나19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견뎌내고 생존하며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그게 바로 인간으로 태어나 감당해야 하는 책무이자 누릴 수 있는 권리이다. 국가는 오직 국민으로부터 정당성이 나오며 국민을 위할 때만 존재 가치를 가진다. 노란 점퍼를 입었다고 해서 국가가 해야 하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5000만이 모여 살기에 서로 생각이 다르고 원하는 바가 같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국민의 아픈 맘과 시린 손을 따뜻하게 해 줄지, 지도자의 말 한마디에 국민이 얼마나 위로받고 힘을 낼 수 있는지만 생각하며 진영을 구분하지 말고 국가를 운영할 때 국민은 국가를 존경하고 따른다. 위대한 우리 국민은 위대한 국가를 가질 자격이 있다.
김중백 경희대 교수 사회학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