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정읍시 고부면 고사부리성(사적 제494호)에서 막대형 목제로 된 ‘상부상항(上卩上巷)’ 유물이 발굴됐다. 상부상항은 백제의 수도를 편제한 오부(五部)·오항(五巷) 중의 하나로 ‘부 중의 상, 항 중의 상’을 의미한다. 고사부리성이 백제 중방성으로서 위상을 지니고 역할을 했음을 엿보게 한다.
정읍시는 전라문화유산연구원과 함께 고사부리성 남성벽 안쪽 평탄지를 대상으로 8차 정밀 발굴조사를 진행해 ‘상부상항(上卩上巷)’명이새겨진 목제 유물을 발굴했다고 12일 밝혔다.
그동안 오부명이 새겨진 유물은 대부분 기와이고 오부명과 오항명이 함께 기술된 것은 부여 궁남지에서 출토된 서부후항(西卩後巷)명 목간(木簡)이 유일하다.
상부상항은 목제형 유물 하나에서 상하 방향으로 새겨졌으며, 백제 사비기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2005년 이뤄진 북문지 발굴 조사에서 ‘상부(上卩)’, ‘상항(上巷)’이 새겨진 기와편이 출토된 적이 있으나, 목제로 발굴된 것은 이 지역에서 처음이다. 또 국내에서 백제 시대 오부명과 오항명이 함께 기술된 것은 1995년 부여 궁남지에서 출토된 서부 후항(西卩 後巷) 명 목간(木簡)이 유일하다.
전북 정읍시 고부면 고사부리성 발굴 현장. 이곳에서 백제의 수도 편제를 의미하는 ‘상부상항’명이 새겨진 목제 유물 등이 발굴됐다. 정읍시 제공
이번 조사에서는 또 삼국 시대, 통일신라 시대, 조선 시대에 걸친 다양한 유구와 함께 공간 이용 변화상을 엿볼 수 있는 시설도 확인했다.
특히 조사 구역이 두 봉우리 사이 계곡 부근에 위치해 유수 퇴적층이 분포하고 물을 이용하기 위한 저수시설과 우물, 목제 배수로, 지반 보강 시설 등이 다수 확인됐다. 이 중 백제 시대 조성된 직사각형 모양의 저수 구덩이(길이 640㎝, 잔존 너비 192㎝)는 내부가 오랜 기간 침수돼 얇은 점토층과 실트층이 반복적으로 쌓여 있었다. 바닥에는 삿자리를 깔고 양 가장자리 한쪽에 결구를 위한 구멍을 뚫은 막대형 목재(길이 144∼148㎝, 두께 3.3∼3.6㎝)를 한 쌍씩 나란히 붙여 설치한 것이 함께 확인됐다.
고사부리성은 백제 오방성(五方城) 중의 하나인 중방(中方)성으로 고부면 고부리 성황산(해발 133m) 정상부에 자리하고 있다. 두 봉우리를 감싸는 포곡식(包谷式) 산성으로 둘레 1050m 크기로 조선 시대 영조 41년(1765년)까지 읍성으로 이용됐다.
정읍시는 상부상항 목제 유물 등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 보내 원형 유지를 위한 보존처리 중이며, 전문가들의 유물 선별 과정을 거쳐 국립박물관 등에 소장할 예정이다.
전라문화유산연구원 관계자는 “그동안 상부상황명 유물은 백제 고도인 부여, 익산 등지에서 기와편을 통해 주로 출토됐다”면서 “향후 오부와 오항의 관계, 상부상항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데 새로운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읍=김동욱 기자 kdw763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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