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벌써 은퇴 시기
모아둔 돈은 별로 없는데 쓸 곳은 많아
퇴직 뒤 생활비 벌고자 72세까지 일해
OECD 평균 은퇴 연령보다 8년 길어
부부 기준 적정 노후 생활비 267만원
소득 감소로 평균 226만원 수준 그쳐
국민연금 수령액도 월 92만원에 불과
소득지원·고용 두가지 측면 대책 필요
대기업에 다니는 50대 후반의 A씨는 얼마 전 회사에서 전직 지원 프로그램 참여를 독려하는 메일을 받게 되면서 충격에 빠졌다. 아직 충분히 더 일할 수 있고, 자녀 결혼도 시켜야 하는데 퇴직 대상자로 몰렸다는 생각 때문이다. 1980년대 대학 졸업 후 취업해 앞만 보고 달려오면서 노후 계획은 미뤄둔 상태였다. A씨는 “자산은 살고 있는 집에다 예금 조금이고, 노후 준비는 국민연금과 퇴직금 정도”라며 “준비가 안 돼 있다는 두려움과 막막함 등을 느낀다”고 말했다.
은퇴 후 노후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는 5060(50∼60대) 신중년 세대의 가장 큰 고민이다. 여행, 취미생활을 하며 여유로운 노후를 바라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자산은 부동산에 묶여 있고, 국민연금 수급액만으로는 부족한 경우가 많다. 퇴직 후에도 부모 부양, 자녀 지원 등 돈 들어갈 데는 여전하다. 늦은 나이까지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처지인 셈이다.
◆사망 13∼16년 전까지 경제활동
27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은퇴 후 기대여명이 가장 짧다. 기대여명은 어느 연령에 도달한 이후 몇 년 동안 생존할 수 있는가를 계산한 평균 생존연수를 말한다. 2018년 기준으로 한국 남성노인은 72.3세 은퇴하고, 은퇴 후 기대여명은 12.9년이다. 여성 노인은 72.3세 은퇴하고 16.3년을 더 산다. OECD 평균 은퇴 연령은 남성 65.4세, 여성 63.7세, 은퇴 후 기대여명은 각각 17.8년, 22.5년이다. 한국 노인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오랜 기간 일을 하면서, 경제활동에서 벗어나 사망에 이르기까지 기간이 짧은 것이다.
실제로 70∼74세 노인의 경제활동참가율은 35.3%로, OECD 평균 16.2%의 배에 달한다.
사회참여나 보람, 건강 등을 위해 계속 일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경제적인 이유가 적지 않다. 2019년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를 보면 근로 희망 사유로 ‘생활비 보탬’이 59.04%로 가장 높았다. 이어 일하는 즐거움 33.94%, 무료해서 3.3%, 사회가 필요로 함 2.22% 순이었다.
이 같은 불안정한 고령층 노후 문제는 은퇴를 시작한 신중년 세대가 증가하면서 더 악화할 수 있다. 신중년은 50~69세 연령대를 말하는데, 올해 전체 인구의 30%를 차지하고, 2026년 32.2%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은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일찍 직장에서 나오게 되는데, 노부모와 자녀 ‘이중 부양’의 부담을 지고 있다. 노후 대비가 취약할 수밖에 없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실시한 ‘신중년의 안정적 노후 정착을 위한 생활실태조사’에서 신중년이 희망하는 근로 참여 연령은 평균 69.2세이며, 70세 이상까지 근로 활동을 희망하는 비율은 59.9%로 절반을 넘었다. 58.1%가 소득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답했다.
◆부부 월 267만원 필요한데 수입은 부족
은퇴 후 가장 큰 걱정은 생활비다. 지출은 계속되는데 수입은 많이 줄어든다.
국민연금공단 국민연금연구원의 ‘국민노후보장패널’ 8차 조사 결과를 보면 50대 이상 중·고령자는 표준적인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적정 노후 생활비’로 부부 267만8000원, 개인 164만5000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저 생활비는 부부 기준 194만7000원, 개인 기준 116만6000원이었다.
그러나 통계청의 2019 가계금융복지조사 자료를 보면 가구 소득(근로소득, 사업소득, 재산소득, 이전소득)은 은퇴 전 평균 6255만원에서 은퇴 후 2708만원으로 감소했다. 월 226만원 수준으로, 생활비를 겨우 충당하는 수준이다.
자산 대부분이 부동산이어서 유동성이 부족하고, 현금 수입은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에 의존하고 있어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20년 이상인 수급자의 월평균 연금액이 92만원이다.
신중년과 고령자들을 위한 일자리는 충분하지 않다. 자영업을 하지 않는 경우 연령이 높아질수록 할 수 있는 일은 단순노무와 임시직이 대부분이다.
노후 스트레스는 우울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신중년의 안정적 노후 정착을 위한 생활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8%가 우울 상태라고 답했다. 배우자가 없는 경우(54%), 1인 가구인 경우(53.4%) 우울 상태 비율이 높았다. 전체 응답자 중 2.7%는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 가구 소득이 낮을수록 자살을 생각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 높았다.
노후 문제 해결을 위해 고령층의 높은 경제활동 참가 원인 등을 분석하고 소득지원과 고용 두 가지 측면에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고제이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적연금과 기초연금 등 현행 노후소득보장제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재정부담 문제도 있어 고용 측면에서 함께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중고령자 고용에 대한 책임은 정부와 기업이 적절하게 분담하는 것이 고령화 시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자체·공공기관 진로컨설팅 활용 ‘경제력 유지’
은퇴 후에는 이전과는 다른 생활이 펼쳐진다. 재정 상태는 물론 사회적 지위도 달라진다. 이로 인한 스트레스를 줄이려면 대비가 필요하다.
27일 한국고용정보원 ‘한눈에 보는 신중년 5060 경력설계 안내서’ 등에 따르면 퇴직 후 가장 큰 변화는 자신의 지위다. 은퇴로 사회에서 인정해주는 명함이나 직함이 없어진다. 사회에서 고립되지 않도록 지역 사회단체나 자원봉사단체 참여 등 연결고리를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가정 안에서는 아내와 남편의 역할이 변한다. 전통적으로 남편이 돈을 벌어오고 아내는 살림하는 구조였다면 은퇴 후에는 새로운 역할분담을 해야 한다. 나이가 들면서 체력이 떨어질 수 있기에 규칙적인 운동으로 건강관리를 해나가야 한다.
정기적으로 들어오던 소득이 없어지면서 소비에도 제약을 받는다. 퇴직 후 경제력에 걸맞은 삶을 영위하려면 지금부터 소비수준을 바꿀 필요가 있다. 가정경제의 지출 요인을 분석하고 낭비 요인을 제거해 효율적으로 자산을 관리해야 한다. 자녀와 관련된 재무위험을 줄이고 가족 간 재무에 대한 대화로 사전에 갈등을 줄여야 한다. 또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 정기적인 수입원을 확보하고, 주택연금이나 농지연금 등을 활용해 부동산 자산과 금융자산의 비율을 적절하게 유지한다.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고 있다면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 등에서 운영하는 진로컨설팅지원 프로그램을 활용해도 좋다.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는 재무와 건강, 여가 등 다양한 영역에 대한 진단과 상담, 교육 등을 제공하고 있다. 전국 109개 지사에서는 노후준비 일반상담을, 전문상담사가 배치된 16개 지사에서는 노후준비 심층상담인 전문상담과 재무설계 서비스를 각각 받을 수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운영하는 ‘대한민국 평생 현역 준비프로젝트’는 만 40세 이상 재직자 및 구직자를 대상으로 한다. 생애경력설계 자가진단을 해보고 그에 따른 경력 관리, 상담을 진행한다. 퇴직자나 퇴직 예정자를 대상으로 전직지원서비스도 제공한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 운영하는 ‘50플러스 포털’에서는 장년층 대상 채용정보, 학교·복지기관·지역 등과 연계한 사회공헌활동 정보 등을 볼 수 있다. 일자리 수요와 인재 데이터를 매칭하는 인재뱅크, 창업 관련 교육 및 지원 프로그램, 상담서비스 등도 운영하고 있다. 부산, 대전 등 지자체별로 비슷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시니어인턴십’은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만 60세 이상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사업이다. 개발원과 운영기관에서 진행하는 교육을 이수한 시니어 근로자를 채용한 기업이 인턴(3개월) 과정을 거쳐 6개월 이상 고용 계약을 맺으면 월 급여의 50%(1인당 최대 270만원)를 정부가 해당 기업에 지원한다.
이진경 기자 l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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