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와 중국의 끈끈한 관계는 오랜 기간 중국이 공들인 결과다.
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중국은 1962년 미얀마에 군부 독재정권이 들어선 이래 수십년 간 군정을 지원해왔다. 서구 사회는 반민주 독재정권에 각종 경제 제재를 가하며 등을 돌렸지만 중국은 아낌없는 지원을 보냈고, 이는 군부에게 구명줄과 같았다. 중국은 군부 엘리트를 비호하는 대가로 미얀마의 풍부한 가스와 목재 채굴권을 확보했다. 중국에게 미얀마는 천연자원 가득한 창고나 다름없었다.
미얀마 경제는 갈수록 중국에 종속됐고, 군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미얀마 군부가 2000년대 후반 권력이양 로드맵을 발표하는 등 변화의 조짐을 보인 데는 이런 판단이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2011년 비록 친군부 정당이기는 하나 민간정부가 들어서면서 미얀마는 중국의 가장 큰 투자사업 중 하나였던 36억달러(약 4조원) 6000㎿ 댐 건설 프로젝트를 취소한다.
이를 계기로 중국은 ‘군부=중국, 아웅산 수치=서구’라는 공식을 지우고, 수치와 그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에도 손을 뻗는다.
미 워싱턴 싱크탱크 스팀슨센터의 윈쑨 선임연구원은 WSJ에 “중국의 전략은 항상 ‘우리는 누구든 권력을 잡는 사람과 함께 한다’였다. 그게 중국식 도덕적 유연성이다”라고 했다.
중국은 NLD 당원을 포함해 종교지도자, 시민단체 활동가, 기자 등을 초청해 관계를 넓혔는데, 그 인원이 2013년 이후 최근까지 1000명이 넘는다.
수치는 2016년 국가고문 겸 외무장관에 취임한다. 수치가 국가고문으로 첫 방문한 나라도 중국이다. 헨리 잭슨 국제학연구소의 메리 칼라한 교수는 “이 일로 중국은 ‘NLD는 전적으로 친서방 정권’이라는 악몽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 있었다”고 전했다.
미국도 미얀마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미얀마 군부가 권력이양 계획을 발표한 뒤 2009년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미 국무장관은 커트 캠벨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를 미얀마에 보내 수치에게 힘을 실어줬다. 2011년에는 클린턴이 직접 미얀마에서 수치를 만났고, 이듬해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방문한다. 미국 대통령의 첫 미얀마 방문이었다.
당시 미국은 미얀마가 민주화가 되면 미 기업에 투자의 문이 열릴 것이란 계산이 있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경제 발전은 더뎠고, 규제 장벽도 높았다. 더구나 2017년 로힝야족 탄압이 벌어지면서 국제사회 경제 제재를 우려한 기업의 투자는 더 위축됐고, 미 정부도 오롯이 NLD편에 서기 어려웠다.
서구와 미얀마 정부 간 다시 틈이 벌어지자 중국은 더 적극적으로 수치 정부의 손을 잡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로힝야족 유혈사태를 규탄하는 결의안 채택을 추진하자 중국은 적극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훗날 수치 정부는 “주권국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준 중국에 감사하다”는 뜻을 표하기도 했다.
지난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 지도자로는 20년 만에 처음으로 미얀마를 방문해 대규모 투자 사업에 서명했다. 미얀마 현지 연구소가 추산한 바에 따르면 중국이 추진하는 대형프로젝트 34개의 투자액은 240억 달러다. 2019년 미얀마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36%에 달하는 규모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