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 탄핵소추당한 임성근 판사
녹취록 공개하며 ‘이중성’ 드러나
법조·학계 “권력 앞에 누워버려”
독립성 훼손 질타하며 사퇴 요구
정기인사 요직 진보 모임이 독식
코드 논란까지 불거져 설상가상
법원 내부 “모든 것을 집어삼켜”
상당수 판사들은 ‘신중론’ 견지
대표회의, 인권법硏 회원 포진에
입장 표명 않고 회의조차 안 열어
사법부 대한 불신 갈수록 커져도
金 대법원장 사퇴 의사는 없는 듯
김명수 대법원장의 ‘거짓말·정치권 눈치보기’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법관 탄핵소추를 당한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녹취록을 공개, 김 대법원장이 거짓말한 것으로 드러나자 사법부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오점을 남겼다는 비난이 거세다. 이균동 신임 대전고등법원장은 최근 취임사에서 “사법에 대한 신뢰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법원이 조롱거리로 전락하는 등 재판의 권위와 신뢰가 무너져 내려 뿌리부터 흔들리는 참담한 상황”이라고 했다. 현직 부장판사는 “정의를 상징해야 할 사법부 수장의 발언이라고는 믿기 힘든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대법원장이 사법부의 독립성을 스스로 훼손했을 뿐 아니라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야당은 물론 법조계·학계 등에서도 사퇴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김 대법원장이 공수처 1호 수사 대상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럼에도 김 대법원장은 침묵으로 버티고 있다. 사법부 불신은 갈수록 커지고 있는데 김 대법원장은 자기 안위만 생각하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정의 수호자’ 대법원장의 거짓말 파문
김 대법원장은 건강 문제로 사표를 받아달라는 임 부장판사의 요청을 세 번이나 거절했다. 그는 임 부장판사에게 “지금 뭐 탄핵하자고 (여당에서)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 말이야”라고 해놓고 국회가 진위 확인을 요청하자 “탄핵 얘기를 한 적이 없다”는 답변서를 보냈다. 하지만 임 부장판사가 녹취록을 공개하자 “9개월 전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해 다르게 답변한 것에 송구하다”고 말을 바꿨다. 43분간 여섯 번 탄핵을 언급했다. 그러자 “법복을 걸친 정치꾼” “1987년 민주화 이후로 이토록 무능하고 비양심적인 대법원장이 있었는지 의문”이란 비난이 터져 나왔다.
◆설상가상으로 ‘코드 인사’ 논란 확산
지난 3일 단행된 법관 정기인사를 놓고 ‘코드 인사’ 논란이 재점화됐다. 서울중앙지법원장,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민사1수석부장판사 등 ‘빅3’ 요직을 또 우리법연구회·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이 차지했기 때문이다. 특히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조국 전 법무장관 등 주요 피고인 사건을 담당한 윤종섭 부장판사가 인사 관례상 아주 이례적으로 6년째 서울중앙지법에 남아 논란을 키웠다. 조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의 항소심 재판부가 전부 교체되고, 김 대법원장이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으로 중용했던 부장판사가 배치돼 뒷말이 무성하다.
◆법조계·학계 등 사퇴 요구 봇물
전직 대한변호사협회장 8명은 “사법부 독립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집권 정치세력의 부당한 압력에 맞서 사법부 독립을 수호할 의지를 보이기는커녕 권력 앞에 스스로 누워버리고, 국민 앞에서 거짓말하는 대법원장은 대한민국 헌정사의 치욕”이라는 성명을 냈다. 대한법학교수회도 “대법원장 언행을 보면 정치권력에 좌고우면하는 모습만 보인다. 국민을 속인 대법원장을 사법부 수장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15일 김 대법원장을 직권남용·허위 공문서 작성 및 행사 등 4개 혐의로 대검에 고발했다.
◆법원 내부 반발하지만 신중론 우세
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14일 “법원의 모든 것을 집어삼킨 대법원장의 거짓”이라며 “대법원장 퇴진만이 법원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후배 법관들의 자존심을 되돌려주는 마지막 희생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송승용 수원지법 부장판사도 법원 내부망에 “지금 신뢰의 위기를 자초한 것은 바로 김 대법원장 본인”이라며 “대법원장은 이제라도 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국민과 사법부 구성원 전체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해야 할 것”이란 글을 올렸다. 하지만 상당수 판사들은 신중론을 견지하고 있다. 대법원장의 거짓말과 정치권 눈치보기는 분명 잘못이지만 외부에서 쏟아지는 사퇴 요구를 정치 공세로 받아들이며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정욱도 대구지법 부장판사는 “사법부 구성원들까지 정치화에 휘말려 자중지란을 벌이는 일이 없기 바란다”는 글을 올렸다.
◆법관대표회의 왜 침묵하나
법관대표회의 운영진의 인적 구성을 보면 입장을 내지 않는 이유가 짐작된다. 운영진 12명 중 의장을 포함한 7명이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이다. 법관대표회의가 인권법연구회에 포위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인권법연구회는 김 대법원장이 2011년 만들어 12대 회장을 지냈고 회원이 460명에 이르는 법원 내 최대 모임이다. 의견수렴 기구로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지만, 법관대표회의는 이번 사안에 대해 회의를 열 계획이 아직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는 “이번 사안이야말로 법관대표회의를 소집해 논의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건이고 법관대표회의가 반드시 입장을 표명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자진 사퇴 가능성 낮아
김 대법원장은 스스로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지난 4일 퇴근길에 “이유야 어찌 됐든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한 뒤 줄곧 침묵하고 있다. “사퇴하라”는 야당 의원들 앞에서 “더 나은 법원을 위해 한번 잘 해보겠다”고 했다. 법관대표회의가 침묵하고 여당도 방패가 돼주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매일 출근길에 기자들이 추가 입장을 묻고 있지만 묵묵부답이다. 김 대법원장의 거취 논란은 당분간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에 너무 악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국면과 맞물려 정치적으로 증폭될 가능성이 크다. 가장 큰 관건은 법관대표회의가 열리는지 여부다.
채희창 수석논설위원 cjord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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