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가 발생한 미얀마에서 군경이 20일(현지시간) 시위대를 향해 실탄과 고무탄 등을 발사해 10대 청소년을 포함해 최소 2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군경의 유혈진압으로 사망자와 부상자가 속출하면서 쿠데타 이후 미얀마에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쿠데타 이후 시위에 나섰던 시민들의 대응 강도가 높아질 것으로 보여 대치전선이 극단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군부의 강경 진압…최소 2명 사망 유혈 사태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20일 오전 만달레이 소재 한 조선소에서 쿠데타에 항의해 파업하던 노동자들을 향해 군과 경찰 수백 명이 배치됐다. 저격수를 포함한 군경의 배치에 시민들이 퇴각을 요구하며 항의했지만, 돌아온 것은 군경의 폭력 진압이었다.
군경의 폭력에 시위대 일부가 새총을 쏘거나 돌멩이를 던지며 저항 강도를 높이자, 군경은 이번엔 고무탄과 새총, 최루탄에 이어 실탄을 발포했다.
결국 실탄 사격으로 10대 청소년 등 최소 2명이 목숨을 잃고, 20명이 넘는 이들이 다쳐 병원으로 이송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 이후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에 대해 구금 조치를 연장한 뒤 본격적인 ‘공포 정치’를 본격화한 것이다. 미얀마 군부는 앞서 국회의원에 대해 체포영장 발부를 남발하고, 군을 모욕한 국민들을 처벌할 수 있도록 형법을 개정했다.
국제적 연대 속에 시민저항 성장과 파국 등 다양한 가능성
미얀마에서 쿠데타와 본격적인 공포 정치 가동되면서 한때 기대됐던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연대도 타격받받게 됐다. 하지만 유혈 진압 속에서도 미얀마 시민사회가 쿠데타 이전에 비해 성장하고 있는 징후가 확인되고 있다. 국제적 연대도 이뤄지고 있다. 이런 연대는 정보통신기술(ICT) 발전에 따른 효과로도 볼 수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쿠데타 이후 양곤과 만달레이 등 500곳이 넘는 미얀마 곳곳에서 쿠데타 발발 직후부터 여러 시위가 펼쳐지고 있다. 헌정 원상회복과 쿠데타 세력의 퇴진을 주요 내용을 하고 있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군부세력이 미얀마 민주화 여정의 가치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시민사회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시위이기도 하다. 최근 몇 년 동안 동남아와 인근 홍콩을 관통하고 있는 시민사회의 의식을 담보하고 있다.
동남아 정치와 시민사회를 연구하는 이들은 이런 배경으로 ‘밀크티 동맹(Milk Tea Alliance)’을 꼽는다. 밀크티 동맹은 반독재, 반권위주의 등에 대한 국경을 넘는 연대다. 애초 홍콩, 대만, 태국 등지의 젊은 시위대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밀크티를 들고 저항하며 찍은 이미지들을 상징했지만, 이제 미얀마 등 동남아에도 적용되는 개념이 되고 있다.
오프라인 시위를 가능하게 한 것은 홍콩과 태국 시위에서 영향력을 발휘한 트위터다. 젊은 시위대는 트위터를 적극 활용하면서도 군부 세력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시위 몇 시간 전까지도 구체적인 내용을 적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트위터는 군부가 페이스북 접속을 차단하자, 시위대가 대안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는 통로다.
SNS와 공감대를 넓히는 대중문화의 ‘상징’ 활용도 눈길을 끈다. 미얀마 시위대는 영화 ‘헝거 게임: 판엠의 불꽃’에서 차용해 태국의 반정부 시위에서 주목받았던 ‘세 손가락 경례’를 선보였다. 미키 마우스, 스파이더맨 등 헐리우드 캐릭터도 활용했다. 이들 캐릭커가 ‘악의 상징’ 군부를 물러나게 한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호주 시드니모닝헤럴드(SMH)는 긴장이 가득한 시위현장에서 상부상조 정신이 구현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시위 주동자의 체포를 방지하기 위한 자발적 노력이 펼쳐지고, 음식과 생수가 공급되고, 전단이 살포된다. 조직화된 시위문화라는 평가를 받을 법도 하지만, 단일 지휘체제를 구축한 것이 아니다는 것이다.
동남아 휩쓰는 ‘권위주의 정부 인정못한다’ 정서
미국 외교전문지 디플로맷은 최근 미얀마 시위의 특징을 분석해 냈다. SNS 활용과 함께 ‘더 이상 권위주의를 용납할 수 없다’는 인식이 표출되고 있다는 게 디플로맷의 분석이다. 단순 비교하기는 힘들지만 2021년 미얀마의 시위는 2014년 태국 시위와 크게 차이가 난다. 2014년 5월 쿠데타 당시 태국에서 발생한 시위에서는 최대 참가자가 1000명에 불과했다. 시위자들의 연대의식도 낮았다. 이런 문화는 보다 과감해지고 연대의식이 강해지면서 이번 미얀마 시위에서는 차원이 다른 모습으로 표출됐다. 시위 참가자는 수만 명이 넘는 경우가 많고, 시민사회의 국제적 지지와 연대의식도 공고해지고 있다. SNS와 상징 표출에 능한 젊은 세대의 광범위한 성장이 불과 7년 사이에 동남아 시위 문화를 바꾸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메시지를 담은 시위는 동남아 각국 정부에 주는 함의가 분명하다. 동남아의 시민사회가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연대의식의 성장에도 확고한 문화로 자리잡지는 못한 상태에서 진통을 겪을 여지 등이 교차하고 있다. 군부가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에 대한 추가 기소와 강경진압을 이어가면서 이 연대의식의 방향과 강도는 짐작하기도 힘들 수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동남아에서 10년 전 중동에서 분출했던 ‘아랍의 봄’이 ‘동남아의 봄’으로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는 미얀마 사태에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회원국 집권세력이 주목하는 이유다.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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