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개발에 아낌없는 투자
아미노산서 절연체 찾아내
반도채 소재 ‘ABF’ 강자로
1908년 일본 과학자 이케다 기쿠나에 교수가 제5의 맛을 소개할 때까지 세상의 맛은 단맛, 짠맛, 신맛, 쓴맛 4가지 맛만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동경대학 이케다 교수는 1899년 독일로 유학을 떠난다. 식품영양학에 관심이 많은 이케다 교수는 유학 중에 세상에 알려진 기존 4개의 맛 이외에 일본인은 쉽게 구별하는 미지의 맛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것은 다시마에서 우려낸 일본 우동 국물의 맛이었다. 이케다 교수는 이 맛을 찾기로 결심하고 일본으로 돌아와, 다시마 국물에서 특별한 맛의 근원을 찾는 연구를 계속한다. 1908년 오랜 연구 끝에 약 12㎏의 다시마에서 30g의 맛 성분을 추출하는 데 성공하고, 이 맛이 아미노산의 일종인 글루탐산염의 맛임을 알아낸다. 그리고 이 맛을 ‘우마미(umami, 감칠맛)’란 이름으로 세상에 발표하고, 이듬해인 1909년 공동창업주인 스스키 사부로스케와 함께 세계 최초의 화학조미료인 ‘아지노모토’를 발매한다. 아지노모토는 일본어로 “味の素”인데 우리말로 직역하자면 ‘맛의 성분’이다. 어쩌면 아지노모토라는 이름이 생소할 수 있으나, 아지노모토는 우리에게 익숙한 바로 MSG이다. 참고로 MSG가 화학조미료라는 이름 때문에 화학합성물질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많은데, MSG는 우리 뇌에 존재하는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탐산에 나트륨 이온이 결합된 물질로,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 안전성이 검증되어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 국가의 식약처로부터 인체에 무해하다고 인정받았다. 이후 회사명을 대표상품명인 ‘아지노모토사’로 바꾸고 조미료 판매는 물론 아미노산 생산 및 활용에 관련된 연구개발(R&D)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며, 100년이 넘게 끊임없이 혁신하며 성장하는 기업이 된다. 아지노모토사는 회사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정보통신기술(ICT) 계열과는 거리가 있는 조미료회사이다. 그런데 최근 이 회사의 이름을 상당히 의외의 물품에서 만나게 된다.
얼마 전 전 세계의 반도체 공급이 어려운데, 그 원인이 반도체 기판용 절연소재인 ‘ABF’ 공급 부족 때문이란 기사를 접했다. ABF의 원이름은 ‘Ajinomoto Build-up Film’이다. 여기 ABF 이름 속 ‘아지노모토’는 앞서 이야기한 그 아지노모토사와 연관이 있다. 아지노모토사는 R&D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2014년 기준 매출 대비 3.2% 규모인 약 3100억원을 연구개발비로 사용했다. 본인도 2014년, 아지노모토사의 ‘식품 연구소’를 방문한 적 있었는데, 이 연구소의 규모가 입구와 출구까지 지하철역 2개 정거장에 걸쳐 있는 어마어마한 규모임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이 연구소는 기업부설 연구소임에도 제품 관련 연구뿐 아니라 향과 맛, 그리고 식품에 관한 한 어떤 주제의 연구도 허용하는 문화에 다시 놀라기도 하였다. 이런 오픈 이노베이션 노력 덕분에 1970년대 조미료 원료가 되는 아미노산에 관한 노하우를 응용하여 절연성을 갖는 에폭시 수지를 개발하겠다는 기초연구팀이 나타났고, 결국 이 기술이 현재 세계 반도체 시장공급을 조절하는 물질인 ABF의 원천기술이 된다. 당시 대부분의 회사들은 잉크방식을 고수한 반면, 아지노모토사는 자신들의 아미노산 관련 기술 노하우를 집대성하여 필름 형태로 개발하였고, 결국 고성능 CPU를 높은 품질로 대량생산이 가능한 기술 개발에 성공하였다.
아지노모토사는 반도체 생산에 꼭 필요한 절연소재 시장을 독점하기 시작하고 있다. 이처럼 끊임없는 오픈 이노베이션 정신은 아마도 이케다 교수의 실험실에서 이뤄낸 기초연구 성과가 미래 신산업으로 이어진 ‘bench to business’ 정신 DNA에서 시작되었다 할 수 있다. ‘bench to business’ 정신은 스탠퍼드대학이나 MIT 등 대표적인 연구중심대학들을 기업가정신대학으로 빠르게 변신시키고 있다. 우리나라도 2019년 소재·부품·장비 분야 갈등으로 시작된 국가적 요구로 대학 기초연구실의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우리 연구실에서 수행하는 연구는 기초연구라 상용화와는 거리가 멀다고만 생각했는데, 조미료의 아미노산에서 반도체의 절연체를 찾아낸 상상력과 이를 상용화해낸 오픈 이노베이션 정신을 곱씹으며, 가치를 창출하여 세상에 기여하는 연구실로의 변화도 고민해본다.
문제일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교수 뇌·인지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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