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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의 일상 속 문화사] ‘V’자 손모양 하며 “피스아웃”… 90년대 ‘굿바이’ 의미 슬랭으로 퍼져

입력 : 2021-03-02 10:00:00 수정 : 2021-03-01 20: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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⑭ ‘V’ 사인은 왜 퇴장을 의미하나
1960년대 히피들의 ‘평화’ 표시서 파생
최근 등장한 음성 대화 소셜미디어 앱
나가기 버튼에 ‘V’자 손모양 사용 눈길
승리·평화 등 시대·지역별로 의미 다양
1941년 7월 처칠 총리가 사용 유명해져
손등 바깥쪽 향해 욕으로 오해받기도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는 ‘승리의 브이’를 전 세계적으로 확산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잘 보면 처칠은 손등을 안쪽으로 혹은 바깥쪽으로 향하는 두 가지 제스처를 사용했다. 이 둘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작년 실리콘밸리에 새롭게 등장한 소셜미디어가 올해 초 한국에 상륙하면서 폭풍과 같은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10여 년 동안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처럼 텍스트와 이미지를 기반으로 한 서비스와 유튜브, 틱톡과 같은 동영상 기반의 서비스가 대부분을 차지했던 소셜미디어 산업에 오로지 오디오만으로 승부를 거는 미디어가 나타난 것이다. 이 화제의 앱은 바로 ‘클럽하우스’(Clubhouse)다. 관심 있는 사람을 찾아 팔로잉하는 등의 기능은 기존 소셜미디어와 같지만, 오로지 음성으로만 소통한다는 점이 다르다.

따라서 앱의 인터페이스도 여타 소셜미디어 앱과 조금 다른데, 그중 하나가 여러 명이 모인 대화방에서 대화를 나누거나 듣다가 나갈 때 사용하는 버튼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음성 대화방에서 나간다는 표시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브이(V)자 손 모양이 버튼의 아이콘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흔히 승리(victory)를 의미한다고 알려진 이 모양이 ‘나간다’, ‘떠난다’는 의미로 사용되게 된 건 왜일까. 이걸 이해하기 위해서 이 제스처가 가지고 있는 다양하고 흥미로운 용도의 역사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에 따라서는 브이자 손 모양의 기원을 수백 년 전 영국에서 찾기도 한다. ‘웨일스 장궁(긴 활)’으로 알려진 영국의 롱보(longbow)를 사용하던 궁사들은 백년전쟁 동안 프랑스 병력에 큰 타격을 입히곤 했고, 그런 이유로 프랑스군은 영국의 궁사들을 잡으면 다시는 활을 쏘지 못하도록 (활을 쏘는 데 사용하는) 엄지와 검지를 잘라버렸다고 한다. 따라서 잡히지 않은 궁사들은 프랑스군을 향해 “나는 손가락이 멀쩡하니 너희들에게 활을 쏘겠다”는 투지의 의미로 두 손가락을 올리곤 했다는 것이다. 그럴듯한 이야기지만 이를 확인할 만한 당시의 기록은 찾을 수 없다.

기원이 확인되는 용례는 20세기에 들어서 나타난다. 2차 대전의 위협이 커지던 1939년 5월에 한 프랑스 신문의 헤드라인에 “승리의 브이(V pour victoire)”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고, 전쟁 중인 1941년에 벨기에의 한 방송사가 “승리의 브이”라는 말을 사용한 기록이 있다. 이들 언론사가 처음 시작한 것인지, 아니면 대중 사이에 퍼지던 표현을 옮긴 것인지는 모르지만 독일과 전쟁 중이던 유럽 국가들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손 모양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1941년 7월, 당시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가 사용하는 장면이 사진에 찍히면서부터다. 그런데 당시 처칠의 사진을 잘 보면 처칠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손 모양을 하고 있다. 둘 다 검지와 중지를 위로 올린 동작이지만 어떤 사진에서는 손등이 바깥쪽을, 어떤 사진에서는 안쪽을 향하고 있다. 대수롭지 않은 차이이고, 처칠 본인도 눈치채지 못했을 수 있지만, 이 손 모양이 가진 의미들을 잘 아는 사람들은 처칠이 의도적으로 교묘하게 두 가지 동작을 사용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손등을 바깥쪽으로 향한 브이 동작은 흔히 ‘손가락 욕’으로 알려진 중지를 치켜드는 행동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 욕이기 때문이다.

손등을 바깥으로 한 브이자 손 모양은 영국과 아일랜드, 호주와 남아프리카, 뉴질랜드 같은 일부 지역에서 상대방에 대한 욕이나 조롱의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그런 이유로 처칠의 손동작을 연구한 사람들은 처칠이 공개적으로 승리를 의미하는 손동작을 사용하면서 슬쩍슬쩍 손등을 바깥으로 보이는 브이자를 그린 것이 나치 독일과 히틀러를 향해 손가락 욕을 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런데 같은 영어권이라고 해도 미국과 캐나다에는 이런 손가락 욕을 사용해온 역사가 없다. 따라서 미국인들은 이 브이자를 그릴 때 손등이 어느 쪽을 보는지 특별히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데 이것이 1992년 조지 H W 부시(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호주를 방문했을 때 문제가 되었다. 대통령 전용 방탄차를 타고 자신의 방문에 항의하는 시위대 앞을 지나던 부시 대통령은 대수롭지 않게 두 손가락을 들어 올렸는데 하필 손등이 바깥쪽을 향했고, 이는 외국을 방문한 대통령이 방문국 국민들에게 손가락 욕을 한 것으로 해석되는 바람에 외교적인 문제로 비화하였다.

미국 대통령뿐 아니라 캐나다 출신 가수 저스틴 비버도 영국을 방문할 때 습관처럼 손등을 환호하는 팬들 쪽으로 향한 채 브이자 손 모양을 그리는 바람에 영국인들의 분노를 사는 일이 몇 차례 있었다. 처칠처럼 전쟁을 이끌고 있던 것도 아닌데 부시 대통령과 비버는 왜 굳이 브이자를 그렸을까. 그들이 한 브이자 손동작은 승리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바로 ‘평화’였다.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퇴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백악관을 떠나면서 양손으로 브이자를 그리는 모습.

미국 문화에서 브이자 손 모양이 승리와 평화, 두 가지로 분화되기 시작한 것은 베트남전쟁 중이었다. 반전운동을 하던 미국 내 평화주의자와 히피족이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그리면서 “Peace(평화)”라고 말하는 것을 유행시켰다. 하지만 동시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처칠이 사용하던 의미를 고수하면서 베트남전쟁에서 승리하겠다는 표시로 브이자 손동작을 사용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대통령직에서 사퇴하면서 백악관을 떠나기 전 헬리콥터 앞에서 양손으로 브이자를 그리는 모습은 현실 파악을 못하는 부패한 지도자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부시 대통령과 비버가 사용한 브이자 손 모양은 ‘승리’가 아닌 ‘평화’의 의미였다. 즉 상대방을 향해 친선의 의미 정도로 브이자를 그린 것인데, 이는 미국적인 문맥이었고 영국이나 과거 영국령이었던 나라들에서는 욕으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 이들의 실수였다.

그렇다면 다시 돌아가서 클럽하우스에서는 왜 ‘조용히 떠나기’라는 버튼에 브이자를 그린 손을 사용할까. 미국에서는 이를 “피스아웃(Peace out)”이라 부른다. 1960년대 히피들의 ‘평화’ 표시에서 파생된 버전으로, 굳이 번역하자면 굿바이(Goodbye) 정도에 해당한다. 이 표현은 한때는 흑인 커뮤니티에서 사용되던 것이다. 파티나 모임에서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가야 할 때 주먹으로 가슴을 두 번 치고 브이자 손 모양을 하면서 “피스아웃”이라고 말하는 게 일반적인 용례다.

하지만 피스아웃을 제일 먼저 사용한 것은 백인 힙합 그룹인 비스티 보이스(Beastie Boys)라고 알려져 있다. 그들이 1989년에 발표한 곡(30-Minute Rule)에서 “So peace out y’all(그러니 다들 잘 지내)”라는 구절이 등장하는데, 이후로 1990년대 미국의 주요 하위문화였던 힙합계에 이 표현이 굿바이를 의미하는 슬랭(은어)으로 널리 퍼졌고, 근래 들어서 이 표현이 점점 주류문화에도 퍼지기 시작했다.

이 표현을 아이콘으로 사용한 거나, 아이콘 손가락에 사용한 피부색이 아이콘에 흔히 사용되는 노란색이나 백인 피부색이 아닌 다소 어두운색을 가지고 있는 것, 그리고 이 앱이 다른 소셜미디어와 달리 초기부터 미국의 흑인 커뮤니티에 많이 퍼진 것은 백인 위주의 실리콘밸리 문화를 극복하려는 이 기업의 노력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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