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구미의 빌라에서 3살배기 여아를 방치해 죽음으로 내몬 혐의로 각각 구속된 엄마와 친모인 외할머니의 신상은 비공개에 부쳐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확인됐다.
경북경찰청은 아이를 살인한 혐의로 체포된 김모(22)씨와 친모로 밝혀진 외할머니 석모(48)씨의 이름과 얼굴 등 신상 공개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15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 진척 상황이 더딘 데다가 이들 모녀의 신상을 공개할 경우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현재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 개최 여부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는 경찰과 변호사 등 내·외부 위원 7명이 모여 피의자의 신상 공개 범위 등을 결정하는 경찰청 산하 기구다. 경찰은 일부 강력범죄에 한해 범행 수법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경우 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지만, 이번에는 심의위원회를 열지 않기로 가닥 잡았다.
따라서 김씨와 석씨 모녀의 신상은 비공개에 부쳐질 가능성이 크다. 지난 12일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한 외할머니 석씨는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숨겼다. 김씨 역시 지난달 11일 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이송될 때 모자를 눌러써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반면 빌라에 홀로 방치돼 숨진 3살배기 여아의 얼굴은 방송 매체를 통해 공개됐다. 그러자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얼굴을 공개하라” “왜 애꿎은 아이의 얼굴만 공개하냐” “궁금한 건 아이를 죽음으로 내몬 모녀의 얼굴이다” 등의 반응이 잇따랐다.
이 사건은 다른 아동학대 사망 사건과도 닮았다. 아동학대로 인한 사망 사건의 경우 가해자의 신상공개가 결정된 사례가 드물기 때문이다. 양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한 끝에 사망한 ‘정인이 사건’ 역시 피해자인 정인이 얼굴만 공개됐을 뿐 양부모의 얼굴은 드러난 바 없다. 10살짜리 조카를 마구 폭행하고 물고문을 해 숨지게 한 ‘이모 부부 사건’도 경찰은 2차 피해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이들 신상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전문가는 신상 공개와 관련한 법망을 손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윤우석 계명대 교수(경찰행정학과)는 “현재 신상 공개 관련 법률을 살펴보면 두루뭉술하게 서술돼 있는 조항이 많다”면서 “경찰의 경우 가해자가 명예훼손을 제기하면 방어하기가 쉽지 않아 신상 공개를 꺼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동학대 사망 사건의 경우 정보의 역순으로 피해자의 얼굴이 먼저 공개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데 국민의 알 권리보다 중요한 건 피해자의 인권”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사건이 수면 위로 떠 오른 건 지난달 10일이다. 외할머니인 석씨가 “계약 기간이 만료됐다”는 집주인의 말을 듣고 바로 위층에 살던 딸의 집을 찾았는데, 거기엔 부패한 주검이 발견됐다. 바로 김씨의 딸이었다.
김씨는 지난해 8월 재혼한 남편과의 아이 출산이 가까워지자 다른 집으로 이사하면서 아이를 버려둔 채 떠났다. 결국 아이는 한여름 더위 속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숨졌다. 그러나 DNA(유전자) 검사 결과 숨진 여아의 엄마가 김씨가 아닌 외할머니인 석씨라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석씨는 숨진 여아는 본인의 딸이 아니라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구미=배소영 기자 sos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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