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계 처분할 사안” 부정적 평가도
“차명으로 투기하면서 정년까지 꿀 빨면서 다니는 게 우리 회사만의 혜택이자 복지인데 꼬우면 니들도 우리 회사로 이직하든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이 문제가 된 후 직장인 익명 애플리케이션(앱) 블라인드에 LH 직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올린 글이다. 해당 글이 논란이 되면서 LH는 작성자를 명예훼손과 모욕,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했다. 하지만 글 작성자에게 범죄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린다.
16일 경찰에 따르면 경남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전날 블라인드 작성자 고발건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LH 측은 “(작성자가) LH 직원과 가족, 전 국민을 공연히 모욕하고 명예를 훼손했다”며 고발 이유를 밝혔다.
대법원은 집단에 대한 명예훼손이 성립하려면 ‘집단의 규모가 작아 그 범위에 속하는 구성원이 특정되는 경우여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명예훼손죄가 성립하려면 피해자가 특정돼야 하므로 LH에 대한 명예훼손은 성립할 수 있지만, 일반 국민에 대한 명예훼손·모욕은 범죄 성립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허위사실 유포 등으로 인한 업무방해죄 소지는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정형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실제로 범죄가 성립할 가능성은 작다고 본다”면서 “사회적 비난여론을 의식한 LH가 품위유지 위반 등의 사유로 징계 처분해야 할 내용을 가지고 고발까지 나선 것”이라고 평가했다.
글 작성자를 찾아내는 것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블라인드 운영사 관계자는 “익명성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가입자를 특정할 수 있는 어떤 데이터도 내부에 저장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지난해 ‘n번방’ 수사 당시 익명 채팅 프로그램인 텔레그램에서도 피의자를 검거했다”며 “블라인드 측의 자료 제공 여부는 수사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유지혜 기자 kee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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