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중국 진출은 여느 서구 국가보다 현저하게 늦었다. 서구는 이미 16세기부터 중국과 교역을 시작했다. 그랬기에 미국은 늦은 만큼 중국 시장을 석권하기 위한 전략을 차별화해야 했다. 더욱이 신생 독립국가로서의 면모와 원칙을 지키기 위한 사상이 지배적이었다.
따라서 미국의 대중국 무역 전략도 차별화되어야 했다.
첫째, 개인사업 차원에서 무역산업의 참여를 장려하는 것이었다. 이는 당시 최대 무역강국이었던 영국의 방식과 달랐다. 영국은 동인도회사를 설립하고 이에 독점권을 부여했다. 미국은 반대로 개인주의와 자유무역을 선호했다. 미국이 개인주의와 자유의 이념으로 건국됐기 때문이다. 1786년 미 의회가 영국식 독점무역기업의 설립을 반대한 이유였다. 대신 미국이 자유무역을 표방하는 만큼 개인 사업가들이 무역산업을 주도해야 한다는 데 확신이 강했다.
둘째, 중국의 영토주권 존중이었다. 다른 제국주의 열강과 달리 미국은 중국의 영토 할양을 원하지 않았다. 1844년 미국은 중국과의 첫 조약(‘왕샤조약’)에서 이를 공식화했다. 미 국무장관 대니얼 웹스터(Daniel Webster)는 협상특사 케일럽 쿠싱(Caleb Cushing)에게 미국이 영토 야욕이 없음을 분명히 할 것을 명했다. 이런 입장은 2차 아편전쟁(1856) 후 중국과 맺은 ‘천진조약(1860)’에서도 유지되었다. 대만을 무역 전초기지로 삼자며 합병이 제기되었으나 제임스 뷰캐넌(James Buchanan) 대통령은 이를 철저히 무시해버렸다.
셋째, 미국은 평등, 공평, 정의를 대중국 무역과 교류의 기본원칙으로 삼았다. 당시 미국 정부가 추구하는 기본적인 외교 방침이기도 했다. 그래서 미국은 중국과 일련의 ‘불평등 조약’을 맺었지만 중국의 주권 침해를 최대한 최소화하려고 노력했다. 대신 미국은 ‘최혜국대우’ 등을 통해 중국 시장에서 자신의 입지 확장에만 집중했다. 미국의 대중국 무역 원칙(주권 존중)과 입장(자유무역)이 오랜 전통을 구비했음을 엿볼 수 있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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