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개발 스타트업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김모(33)씨는 오전 6시 기상과 함께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얼굴도 이름도 본 적 없는 타인들에게 기상 시간을 인증한다. 이어 아침 요가를 실시하고 개인 SNS에 ‘#오하운(오늘 하루 운동의 줄임말)’ 해시태그와 함께 사진을 게재한다.
출근 후 점심시간에는 베스트셀러 순위에는 없지만 취향을 반영해 추천받은 스릴러 소설을 읽는다. 김씨는 “거창한 목표보다도, 몸이 기억하는 작은 습관들을 만드는데 집중하고 있다”며, “작은 성취들이 조금씩 모여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되면서, 일상을 지탱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밝혔다.
습관 만들기를 향한 MZ 세대(밀레니얼+Z세대, 1980~2000년대 출생)의 관심이 뜨겁다. SNS상에는 기상 시간 인증과 자신의 모닝 루틴을 찍어 올린 게시물이 30만 개 이상을 기록할 정도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외부 활동이 어려워진 것도 영향을 미쳤으나, 그 기저에는 가치관의 변화가 있다.
불과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좋은 대학’이나 ‘내 집 마련’처럼 모두가 이뤄야 한다고 여겨지던 공통의 사회적 목표가 있었지만, 급변하는 사회 구조와 다양성을 중시하는 문화가 빠르게 자리잡으면서 ‘나만의 목표’에 더욱 집중하게 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MZ와 기성세대를 구분하는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의사결정에 타인의 시선이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여부”라며 “MZ 세대는 관습적으로 좋다고 여겨지던 일반적인 기준들을 거부하는 대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하는 정서가 기저에 있다”고 말했다.
이는 새벽 기상 및 아침 시간 관리 노하우를 담은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가 지난해 10월 출간 이후 입소문을 타며 꾸준히 화제가 되고 있는 배경과도 맞닿아있다.
저자인 김유진 변호사는 유학 시절 겪은 인종차별을 비롯해 지금까지 겪었던 난관을 극복할 수 있었던 힘으로 새벽 기상 습관과 오롯한 자기 계발 시간으로서의 아침을 강조했다. 이른 오전 시간을 자기 계발 시간으로 활용하는 MZ 세대의 ‘미라클 모닝’에 대한 관심에 힘입어 해당 도서는 자기계발서 분야의 스테디셀러로 우뚝 섰다.
이처럼 자기 계발에 집중하는 밀레니얼들이 늘어나면서, 의지의 영역으로만 여겨지던 습관 형성을 지원하는 서비스들도 늘어나고 있다.
플랫폼 ‘챌린저스’가 대표적이다. ‘챌린저스’는 미션을 정한 뒤 참가비를 내고 목표 달성률에 따라 돈을 환급받는 형식으로 습관 형성을 위한 다양한 챌린지를 진행한다. 2018년 11월 런칭 이후 지난해 말 기준 누적 거래액 814억을 달성했으며, 작년 한 해 동안만 챌린저스를 통해 573억원이 거래됐다. 올 초에는 50억원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으며, 네이버, 아모레퍼시픽 및 삼성생명 등의 기업들과 함께 마케팅 캠페인을 진행하며 B2B 사업도 확대하고 있다.
취향과 습관 개발을 위한 온택트 클래스도 급증하는 추세다. 자아성장 큐레이션 플랫폼을 표방하는 ‘밑미’는 지난해 8월 론칭 이후 글쓰기와 집안 꾸미기 등 삶에 에너지를 불어넣는 의식적인 활동인 ‘리추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광고비 없이 입소문만으로 런칭 7개월 만에 2000여 명의 회원을 확보했으며, 지난 3월 기준 60%의 재가입률과 400명가량의 골수팬을 기반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국내 대형 IT 업체들도 브랜드의 친근감을 높이고 자사 플랫폼에 정기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장치 중 하나로 습관 개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2019년 베타서비스로 런칭한 카카오프로젝트100은 참가비를 내고 챌린지에 참가하고, 미션을 수행하지 못한 날짜에 대한 실천보증금을 카카오의 사회공헌 플랫폼인 ‘카카오같이가치’를 통해 기부하는 시즌제 프로그램이다. 자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시작한 프로젝트였으나, 긍정적인 피드백과 사회 분위기를 반영해 외부에 공개한 이후 베타 서비스 시즌2까지 진행됐다.
이처럼 ‘어제보다 더 나은 나’에 집중하는 MZ세대의 작심삼백일 도전이 꾸준히 늘어나는 데에는 그 기저에 연대와 공감이 있기 때문이다. 동일한 목표를 공유하는 익명의 사람들과 활발히 소통하며, 참가자를 경쟁 상대가 아닌 각자의 목표를 성취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페이스 메이커’로 인식하는 것이다.
밀리의 서재가 최근 발표한 ‘완독 지수’ 또한 이러한 느슨한 연대감을 반영했다. 출판 시장이 형성된 이래 도서의 인기를 판단하는 거의 유일한 척도였던 베스트셀러 대신, 밀리의 서재는 책을 읽은 실제 독자들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특정 도서를 모두 읽는데 소요되는 예상 시간과 완독할 확률을 제시하는 ‘완독지수’를 업계 최초로 개발했다. 완독할 확률 및 완독 예상 시간의 두 개 축을 바탕으로 독서 패턴을 예측하는데 도움을 주는 매트릭스를 도서마다 제공해, 본인의 상황에 알맞은 도서를 더욱 쉽게 선정할 수 있다.
특히, 자신의 독서 데이터가 완독 지수에 지속적으로 반영돼 변화하고, 본인이 좋아하는 책을 모은 ‘나만의 서재’를 꾸려 취향이 맞는 회원들과 소통하는 등 직접적으로 참여하며 교류하는 기능을 바탕으로 독서 습관을 함께 구축한다는 점이 MZ 세대의 큰 호응을 받았다. 실제로, 목표 기간을 선정해 본인의 독서 목표를 회원들에게 공개하고, 자발적인 참여에 따라 독서 습관 만들기를 진행한 회원은 목표 없이 책을 읽은 회원에 비해 평균 2.5배 많은 독서량을 보인 것으로 확인됐다.
밀리의 서재 도영민 독서라이프팀장은 “독서의 형태는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반면, 여전히 책을 고르는 기준은 베스트셀러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세일즈 현황이나 유명인이 추천하는 도서가 아니라, 나와 비슷한 독서 목표를 지닌 개개인의 실제 독서 현황을 참고하고, 이를 통해 개인의 취향을 파악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과도 쉽게 공유할 수 있는 디지털 환경을 구축하는데 중점을 두었다”고 말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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