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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인희칼럼] 엄마 세대의 결혼 vs 딸 세대의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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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5-09 22:39:37 수정 : 2021-05-09 22:3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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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혼 20대초 vs 30대초로 급상승
보편혼 달리 요즘 결혼은 선택
연애와 결혼 분리… 관계도 다양
“결혼도 움직이는 것” 세태 실감

해마다 5월이면 이곳저곳에서 청첩장이 날아들곤 했었는데, 요즘은 카톡으로 오는 청첩장조차 눈에 띄게 줄었다. 덕분인가, 어쩌다 결혼 소식을 듣게 되면 물색없이 반갑기만 하다.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제자 이야기론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간략히 혼인신고만 하고 가뿐히 결혼식은 생략하는 커플들이 제법 많아졌다고 한다.

1929년생 우리 엄마는 1952년 결혼해서 이듬해 첫딸을 낳으셨다. 어린 시절, 엄마는 어떻게 전쟁통에 결혼식을 올렸을까 고개를 갸우뚱해하던 기억이 난다. 한국 나이로 24살에 결혼한 엄마는 당시 기준으로 “노처녀 드디어 시집가네” 소릴 들으셨다고 했다. 하기야 인구센서스 자료를 보면 1926~30년 출생한 여성 가운데 90%가 “결혼했노라” 밝힌 나이가 22.2살이었으니, 노처녀 소리를 들을 만도 했던 것 같다. 그래도 당신 첫딸이 일찍 결혼해서 손녀를 안겨준 덕분에 엄마는 47살에 할머니가 되셨다. 올봄에 딸을 시집보낸 선배는 1955년생 양띠임에도 아직 할머니가 되지 못했으니, 불과 사반세기 지나는 동안 여성의 생애주기에 엄청난 변화가 왔음을 실감하게 된다.

함인희 이대 교수 사회학

지금 한창 딸 아들 결혼시키고 사위 며느리 보는 세대는 대체로 1950년대 중후반~1960년대 초중반 출생한 집단일 것이다. 이들 세대에게 결혼은 생애주기상의 필수 코스였던 만큼, 100명 중 한두 명 빼곤 거의 누구나가 결혼식장에 들어가는 전형적인 ‘보편혼’ 현상을 보여주었다. 실제로 엄마 세대는 23~24살 즈음이면 절반 정도가 결혼을 했고 29~30살이면 90% 이상이 결혼을 했었다. 이런 엄마들 입장에서는 서른을 코앞에 두고도 결혼에 느긋한 딸들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오고 입술이 바짝 마를 테지만, 정작 딸들 입장에서는 30살을 기준으로 결혼한 친구가 절반, 안 한 친구가 절반이니 여유를 부릴 만도 하다.

흥미로운 건 엄마 세대든 딸 세대든 동년배 중 절반 정도가 결혼하기까지 소요되는 기간은 엄마 쪽이 약 4년, 딸 쪽이 약 5년으로 그다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50% 이후 결혼율이 90%에 이르는 기간과 비혼으로 남는 비율은 두 세대 사이에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일례로 1970년대 초중반 출생한 여성의 경우 50%가 결혼하는 데 걸린 기간은 4.4년에 불과했지만, 50%를 넘어 90%가 결혼하는 데 걸린 기간은 무려 13.1년이나 됐다. 40, 50대 신랑 신부를 만나는 일이 아주 낯설지만은 않은 상황이 된 것이다.

최근 통계청은 2020년 평균 초혼 연령이 남성 33.2세, 여성 30.8세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20대 초반 결혼했던 엄마 세대로서는 30대 초반 결혼하는 딸 세대에게 결혼이 갖는 의미가 엄마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대학 진학률이 10%에 불과했던 엄마 세대와 달리 대학 진학률 70%를 훌쩍 넘은 딸 세대는 대학졸업 후 결혼하기까지 싱글로 지내는 기간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한국여성의 생애주기에 “미혼기가 출현했음”을 주목해야 한다는 사회학자의 주장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결혼 연령이 충분히 상승함에 따라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관계 설정도 복잡다단해진 동시에 꽤 정교해졌다. 남사친(남자사람친구) 여사친(여자사람친구)처럼 별다른 감정이 개입되지 않는 이성친구를 사귀는가 하면, ‘썸남 썸녀’처럼 서로를 향한 호감은 유지하되 책임감에서는 자유로운 관계를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엄마 몰래) 로맨틱한 감정 없이도 성관계가 가능한 파트너(friends-with-benefit)를 두기도 한다. ‘돈 가는 곳에 마음 간다’는 ‘관계의 상품화’와 함께, 낭만적 연애와 실용적 결혼의 분리 현상이 그 어느 때보다 확연해지고 있기도 하다.

오래전 화제를 모았던 광고 카피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처럼, 결혼도 움직이는 것을, 그것도 빛의 속도로 달아나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요즈음이다.

 

함인희 이대 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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