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에는 흥망성쇠의 역사가 있다. 청나라가 건국된 후 강희·옹정·건륭 3대의 황제를 거치는 150년 동안 흥성했다. 호사다마라 했던가. 나라가 번창하면서 신농법이 개발되고 그 결과 인구가 증폭했다. 중국 인구도 1억4000만명 정도에서 4억3000만명 이상으로 늘었다. 이는 농민에게 경작지의 축소를 의미했다. 결국 백성들의 소득이 줄어들면서 ‘농민지본’의 사회구조가 무너졌다. 백성들은 가난과 기근에 허덕일 수밖에 없었고 민심은 흉해졌다.
난세에 영웅이 나타난다 했던가. 청나라가 난세의 시대에 진입한다. ‘태평천국(太平天國)의 난’(1850∼1864)뿐 아니라 ‘염군(捻軍)의 난’(1851∼1868)과 ‘동간인(東干人) 반란’(1855∼1873) 등을 겪는다. 이런 난세에 홍수전이 ‘영웅’으로 등장한다. 그가 태평천국의 난을 1850년에 일으킨 장본인이었다.
홍수전은 1843년 과거에 낙방한 후 귀향길에 미국인 선교사 에드윈 스티븐스와 조우한다. 스티븐스로부터 받은 ‘권세양언’(勸世良言) 복음서에서 영감을 받고 1844년부터 포교활동을 시작한다. 그의 활동이 성공을 거두면서 득세하자 그는 배상제회(拜上帝會)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침례교 선교사인 미국인 이사카르 J 로버츠를 1847년에 만난다. 난세에 태평천국의 영웅이 미국인 귀인을 만난 것이다. 로버츠로부터 그는 기독교 정신과 미국의 건국이념 등의 다양한 가르침을 받았다.
이후 1853년 태평천국의 ‘황제’가 된 홍수전은 로버츠에게 합류할 것을 요청하는 서신을 보낸다. 홍수전과 그의 사촌이 태평천국의 롤 모델로 미국을 삼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다. 로버츠 역시 이에 동참하고 싶었다. 그러나 당시 정치적 상황으로 미국 공사는 이를 불허했다. 다른 서구 열강이 중국의 난세를 자신의 국익 증대의 기회로 활용하려는 전략행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이 태평천국과 분명한 선을 긋는 대목이었다. 난세의 중국보다 강한 중국이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라는 사고가 지배한 결과였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국제정치학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