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 금융사고 리스크 부담
실명계좌 발급 제휴 맺기 꺼려
업비트 포함 4곳만 제휴 성공
나머지 수백곳 존폐기로 몰려
당국 “실명계좌 투자금만 보호”
가상화폐 공포지수 역대 세번째
中, 채굴 연루 ‘블랙리스트’ 제재
현재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는 200여개로 추정된다. 이들 거래소 중 9월까지 은행 실명계좌 발급을 받지 못한 거래소들은 무더기로 퇴출된다. 주요 시중은행들은 금융 사고 등 리스크가 커 실명 계좌 발급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4대 거래소를 제외한 중소형 거래소들로선 남은 4개월간 은행 문턱을 넘느냐 마느냐를 두고 생사의 기로에 놓인 셈이다.
26일 가상화폐 업계 등에 따르면 가상화폐 거래소들은 지난해 3월 개정돼 지난 3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에 따라 오는 9월24일까지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과 정보보호관리체계 인증 등의 요건을 갖춰 금융위원회 산하 기관인 금융정보분석원에 신고하고 심사를 받아야 한다.
문제는 국내 주요 은행들이 실명계좌 발급 제휴 맺기를 꺼리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실명확인 가상계좌 이용 계약을 맺은 거래소는 빗썸과 업비트, 코인원, 코빗 등 대형 거래소 4곳뿐이다. 빗썸과 코인원은 NH농협은행, 업비트는 케이뱅크, 코빗은 신한은행과 제휴를 맺고 있다.
이미 거래소와 제휴를 맺은 은행들은 신규 제휴는 생각하고 있지 않고, 아직 제휴를 맺지 않은 국민·하나·우리·SC제일·씨티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들도 실명 입출금 계좌 발급 제휴 계약을 맺지 않기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들로선 실명 계좌 발급 제휴를 맺으면 거래소 안정성 평가와 금융 사고 등에 대한 책임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굳이 나서지 않으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거래소들로선 지방은행이나 인터넷은행과 제휴를 맺어야 하지만, 이들마저 시중은행들과 마찬가지로 리스크 부담을 이유로 실명계좌를 내주지 않는다면 거래소들의 집단 폐쇄는 현실화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부실한 거래소들을 걸러내는 것은 맞지만, 이미 안정적인 운영이 검증된 건전한 거래소들까지 문을 닫는 피해사례가 나올 수 있다고 걱정한다. 가상화폐 업계의 한 관계자는 “무더기로 거래소가 문닫는 과정에서 이들 거래소에서 가상화폐를 구매한 개인 투자자들도 피해를 볼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은 실명 계좌 발급 제휴를 맺은 거래소를 통해 투자한 자금은 보호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이날 ‘코리아 핀테크 위크 2021’ 행사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오는 9월까지 정부에 신고를 마친 가상자산 사업자를 통해 거래하는 투자자의 자금은 자연스럽게 보호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달 국회에서 “가상자산에 투자한 이들까지 정부가 다 보호할 수는 없다”는 발언과 관련해 “투자자들이 거래하는 업소가 어떤 상태인지를 알고 더 안전한 곳으로 옮겨주십사 했던 것이 짧은 시간에 얘기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해명했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주요 가상화폐의 가격이 5월 들어 급등락을 거듭하면서 이에 대한 공포 심리가 역대 세 번째 수준으로 확산된 것으로 나타났다.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에 따르면 ‘디지털 자산 공포-탐욕 지수’는 지난 23일 4.92까지 내렸다. 이는 2017년 10월1일 이후 지난해 3월12일의 0.20, 2018년 1월16일의 3.39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낮은 값이다. 이 지수는 극단적 공포(0∼20), 공포(21∼40), 중립(41∼60), 탐욕(61∼80), 극단적 탐욕(81∼100)까지 5단계로 나뉜다.
업비트 원화 시장 전체 가상화폐에서 지수가 공개된 110개 가상화폐 중 104개(94.5%)가 현재 지수 40을 밑돌아 공포 단계에 해당했다. 특히 온톨로지가스(지수 9.31) 등 29개는 극단적 공포 단계에 머물렀다.
최근 가상화폐 거래금지 원칙을 천명한 중국에서는 가상화폐 채굴에 대한 제재도 내놓았다. 중국 네이멍구자치구는 가상화폐 채굴에 연루된 개인과 기업을 ‘신용 불량명단’(블랙리스트)에 올리는 내용 등의 ‘가상화폐 채굴 행위 타격을 위한 8대 조치’ 초안을 발표했다. ‘사회신용’ 기록이 나빠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들은 고속철과 항공권 구매가 제한되는 등 각종 사회·경제적 불이익을 받는다.
남정훈·김준영 기자, 베이징=이귀전 특파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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