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경쟁자 러시아·중국 맞서
한·미 파트너십 강화가 필수적
고위급委 활성화… 소통 창구로
최근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해외 원전시장 공동 진출에 합의했다. 한·미 양국이 원자력 분야에서 협력할 분야는 다양하다. 우선 원전 시설의 물리적 방호(physical protection)와 원전 업무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인적 보안 같은 원전안전 분야이다. 다음은 폐로 해체 및 제염 분야이다. 국제원자력협회(WNA) 자료에 의하면 세계적으로 설계수명이 다 돼 영구정지에 이르는 원전이 2040년 즈음에는 300기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용후핵연료 관리 분야도 있다. 고리, 한울, 한빛, 월성 등 국내 원전에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는 현재 원전 부지의 수조 보관 등 임시 저장 상태다. 문제는 이들 저장소가 대략 2020년대 중반 이후 점차로 포화상태에 도달한다는 점이다. 한·미 양국이 연료 주기 공동연구를 통해 파이로프로세싱 같은 대안적 방안을 모색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차세대 첨단원전 개발 분야도 포함된다. 특히 소형모듈형원전(SMR)은 300㎿e 이하의 원전으로 공장에서 모듈 형태로 제작하여 현장으로 수송, 설치하는 소형원전을 지칭하며 차세대 원자로로 각광받고 있다. 미국이 개발 중인 VTR, NuScale사와 한국이 개발 중인 스마트(SMART) 원전이 대표적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원전수출 분야 협력이다. 한국이 개발한 APR1400 원전은 설계 선진성, 안전성, 건설 관리성, 경제성, 운영성 등 원전의 모든 주요 부문에서 세계 최고의 성능을 입증하였다. 그뿐 아니라 APR1400은 2019년 8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설계인증을 최종 취득함으로써 미국에서 미국 외 노형이 설계인증을 받은 첫 케이스가 됐다.
국제 원전수출 시장에서 최대의 경쟁자는 러시아와 중국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정부주도의 강력한 원전수출 정책추진 및 재원조달을 지원한다. 러시아는 우라늄 농축·핵연료 재처리 기술전수는 물론 사용후핵연료 수거 정책(take-back)이 강점이고 중국은 자국 내 지속적 원전건설로 낮은 건설단가를 확보하고 견실한 공급망을 보유한 것이 강점이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하면 세계 원전시장은 결국 중·러의 독무대가 되고 안전기준이 우려되는 중·러의 원자로가 세계의 표준모델이 되는 상황이 도래하게 된다.
국제 원전수출 시장에서 중국, 러시아 등 강력한 경쟁자들을 상대하려면 한·미 원자력 파트너십 강화가 필수적이다. 원자력 발전의 원천기술과 역량을 가진 미국의 소프트파워와 지속적인 원전건설로 세계 수준의 원전건설 능력을 입증한 한국의 하드파워를 결합함으로써 한·미가 ‘윈-윈(win-win)’할 절호의 파트너십 구축 기회를 맞고 있다.
한·미 정상이 원전수출에 협력하기로 한 것은 매우 긍정적 신호지만 넘어야 할 과제도 만만찮다.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초래한 정책적 혼선을 시급히 제거해야 한다. 한국은 국가 에너지전환정책과 원자력 수출을 양립하려고 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탈원전, 국외에서는 원전수출을 도모하려 한다는 정책적 비일관성은 한국의 경쟁력을 약화하는 요인이다.
한·미 간에는 이미 고위급위원회(HLBC)가 설치돼 있다. 이를 더욱 활성화해 실질적인 이견 해소의 창구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 예를 들면 사우디아라비아 원전수출에 대해 양국은 원전 기술자립에 대한 이견이 있다. 미국은 APR1400은 물론 APR+를 한국 고유 모델로 인정하지 않는다. 향후 미국의 지적재산권 위반 여부 클레임과 관련해 첨예한 대립이 예상된다. 미국이 해외 원전수출 시 고수하는, 농축 및 재처리를 포기하는 ‘골드스탠더드(Gold Standard)’ 및 IAEA 안전조치 추가의정서(Additional Protocol) 체결 조건화도 한국이 미국과 협력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국제 원전시장에서 한·미가 협력하지 않으면 결국 제3자(러시아, 중국)가 이를 독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한·미가 우선 협력하여 국제 원전시장의 주도권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한국핵정책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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