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당해 어이없어 웃었다?…구자룡 “진술 의문에도 ‘성인지 감수성’으로 유죄”

‘성인지 감수성’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는 가운데, 시대적 변화에 따른 법리적 수정이 따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31일 방송된 YTN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에는 구자룡 변호사가 출연해 최근 성범죄 판결에서 주목하고 있는 ‘성인지 감수성’에 대해 언급했다.

‘성인지 감수성’이란, 성별 간의 불균형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갖춰 일상생활 속에서의 성차별적 요소를 감지해 내는 민감성을 말한다. 성범죄 판결에서는 개별적, 구체적인 사건에서 성폭행 등의 피해자가 처해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는 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즉, 피해자가 진술한 내용에 불합리한 점이 있다거나 모순점이 있더라도 이것이 ‘성범죄 피해자로서 처한 특수한 현실로 인해 그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으니, 이를 이유로 피해자 진술을 쉽게 배척하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피해자가 처한 상황의 맥락과 눈높이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이해하기 위해 도입된 ‘성인지 감수성’에 법조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구자룡 변호사는 “지금 과거에는 무죄가 선고되었을 법한 사건이 유죄 선고가 되는 사례가 있다”면서 “일단 성폭행의 ‘협박 또는 폭행’이라는 개념이 과거에 비해서 굉장히 인정 범위가 넓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논란이 되는 사례들을 보면 폭행이나 협박이 있었는지 의문이 있는 한계선상의 사례들이 등장한다. 이럴 때 ‘억압당했다’, ‘동의했다’라는 것이 증거가 아니라 진술에만 의존해서 판가름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데, ‘무죄추정 원칙’으로 적용되던 것이 최근에는 ‘성인지 감수성’ 이론과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결국 피해자는 진술에 의문이 있어도 그것이 ‘성인지 감수성’으로 치유되는 반면, 피고인은 진술에 모순점이 있으면 유죄증거에 보강까지 되어 버린다”며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무죄 추정의 원칙과 충돌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포장마차에서 우연히 합석한 여성을 옥상으로 데려간 남성이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사건의 경우, 성관계 후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나오는 녹화 영상과 성관계 중 여성의 웃음소리가 녹음된 파일이 증거로 제시됐음에도 2심 재판부는 남성에 실형을 선고 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해 진술이 일관성 있고 구체적”이라며 “범행 현장을 침착하게 벗어나기 위해 손을 잡은 것이고, 갑자기 성폭행을 당해 황당하고 어이없어 웃었다”는 여성의 말을 받아들여 피고인을 법정구속 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구 변호사는 “‘성인지 감수성’이 피해자의 상황을 이해하고 맥락을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을 넘어서서 형사법 대원칙이 훼손된 것”이라며 “법조인들 사이에서 ‘유독 성범죄 사건이 다른 형사사건과 형사법 대원칙이 다르게 적용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존재한다. 판결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법리적으로 ‘맞다, 틀리다’를 논하는 것은 맞지만 이것을 넘어 감성이나 젠더 이슈의 영역으로 치환해서 공격하거나 선동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봤다.

아울러 구 변호사는 ‘무고죄’의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대표적으로 탤런트 이진욱 씨는 강간혐의로 고소를 당했지만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고소인이 무고죄로 처벌을 받았다. 성범죄로 남자가 처벌을 받았다면 3년 정도 실형을 각오해야 하는데, 이 사건에서 무고죄를 저지른 고소인은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형만 받았을 뿐”이라며 “위험부담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것 역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과거 법리의 반성으로 ‘성인지 감수성’이 도입되었다면 분명 지금의 현실에 대한 고려를 해 수정도 있어야 할 것”이라며 “그렇지 않다면 ‘성인지 감수성’ 법리는 의미를 잃고 규범력을 상실하게 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법리적 논의마저도 젠더 갈등인 것처럼 몰아 붙여서 입을 다물게 한다면 이것은 법리나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이라며 “여기서 발생한 형사법 대원칙의 균열은 사회 모두의 손실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강소영 온라인 뉴스 기자 [e-mail]

사진=법무법인 심평 공식홈페이지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