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비리, 젊은 층에 좌절 안겨
공정 원칙 지켰나 통렬히 반성”
“尹 가족에 수사 동일 적용 해야”
나머지 범죄 혐의는 언급 안해
야당선 “반성없는 사과” 맹공
조국은 “나를 밟고 전진하라”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2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스펙 품앗이’와 관련, “민주화 운동에 헌신하면서 공정과 정의를 누구보다 크게 외치고 남을 단죄했던 우리가 과연 자기 문제와 자녀의 문제에 그런 원칙을 지켜왔는지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조국 사태와 관련 민주당 지도부가 사과한 것은 2019년 10월 이해찬 전 대표에 이어 두 번째다. 또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 성추행 사건에 대해 “이미 간헐적인 사과가 있었지만, 다시 한 번 당 대표로 공식적으로 피해자와 가족,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입시·취업비리 및 성추행 연루자 등은 즉각 출당 조치하고 무혐의 확정 전까지 복당도 금지시키겠다고 했다.
송 대표는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 당 대표 회의실에서 열린 ‘국민소통 민심경청 프로젝트’ 대국민 보고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송 대표는 ‘조국 사태’에 대해 “좋은 대학 나와 좋은 지위·인맥으로 서로 인턴 시켜주고, 품앗이하듯 스펙 쌓기 해주는 것은 딱히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런 시스템에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수많은 청년에게 좌절과 실망을 주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과 청년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점을 다시 한 번 사과드린다”며 “기회가 평등하고 과정이 공정하고 결과가 정의로운 나라가 되도록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바로 세우겠다”고 했다.
송 대표는 그러나 “조 전 장관과 관련한 법률적 문제는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으로,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며 사과를 입시문제로 국한하고 나머지 범죄 혐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조 전 장관은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무마 혐의 등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고,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도 불법 사모펀드 등 혐의로 기소돼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조 전 장관 회고록에 대해서도 “일부 언론이 검찰 주장을 일방적으로 받아쓰기해 융단폭격을 해온 것에 대한 반론 요지서로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겨냥해 “조 전 장관 가족에 대한 검찰 수사의 기준은 윤 전 총장의 가족 비리와 검찰 가족 비리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 대표는 박·오 전 시장 사건 피해자에 대한 공식 사과와 재발 방지책 마련을 약속했다. 송 대표는 “권력형 성 비위 사건에 단호히 대처하고 보호하는 기본적인 조치조차 취하지 않은 무책임함으로 인해 피해자와 국민 여러분께 너무나도 깊은 상처와 실망을 남긴 점, 두고두고 속죄해도 부족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피해자 측 의견을 청취해 향후 민주당에서 취해야 할 책임 있는 조치에 대해서도 의논하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영혼없는 사과”라고 혹평했다. 김예령 대변인은 논평에서 “조국 사태로 등 떠밀리듯 했던 이해찬 전 대표의 대국민 사과를 제외하고는 지난 4년간 진심이 담긴 사과나 통렬한 반성 한 번 없던 정권이었다”며 이같이 비판했다. 조 전 장관의 회고록에 대해 ‘반론 요지서로 이해한다’고 한 것을 두고는 “자기변명과 궤변의 연장선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조 전 장관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송 대표의 이하 말씀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그는 “민주당은 이제 저를 잊고 부동산, 민생, 검찰, 언론 등 개혁 작업에 매진해주시길 바라마지 않는다. 저를 밟고 전진하라”며 “저는 공직을 떠난 사인으로, 검찰의 칼질에 도륙된 집안의 가장으로 자기방어와 상처 치유에 힘쓸 것”이라고 했다.
◆宋, 민심과 당심 사이 ‘이도저도 아닌 사과’… 또 갈라진 與
2일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내놓은 ‘조국 사태’ 관련 반성문에선 민심과 당심 사이 타협점을 찾으려는 고민의 흔적이 묻어났다. 대국민 사과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사를 둘러싼 ‘내로남불’ ‘무너진 공정’ 논란을 일찌감치 불식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가족비리 의혹을 강조하며 윤 전 총장의 대척점에 선 당내 주류인 친문(친문재인) 강성 지지층을 향한 구애도 엿보인다. 그러나 당내에선 사과 메시지를 놓고 ‘이도 저도 아니다’ ‘당초 사과할 필요가 없었다’ 등 각기 다른 이유로 반발이 터져 나왔다. 송 대표가 의도한 ‘사태 수습’ 효과는 미지수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송 대표가 이날 ‘민심경청 대국민 보고회’라는 ‘큰 판’을 벌이면서까지 사과에 나선 배경에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리스크 관리’가 절박한 상황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에서 부는 ‘이준석 돌풍’으로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의 ‘정치적 파괴력’이 다시금 주목받은 가운데, 4·7 재보궐선거에서 2030의 심각한 민심 이반을 확인한 여당으로선 본격적인 대선 국면에 돌입하기 전에 당 차원에서 ‘조국 이슈’를 털어낼 필요성이 제기된다. 송 대표는 보고회 모두발언에서 “내년 3월9일 민주당은 국민의 심판대 위에 다시 서게 된다”며 “민주당이 유능한 개혁의 성과와 내로남불 극복, 언행일치를 보여주는 증거자료를 많이 제출해야 한다”고 했다.
대선주자를 보호하려는 노림수도 읽힌다. 당 차원에서 대국민 사과를 하면 조 전 장관에 대한 평가를 요구받는 개별 주자들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 또 각기 다른 평가로 불거질 ‘친(親)조국 대 ‘반(反)조국’ 노선 갈등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실제 이날 여당 ‘빅3’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 정세균 전 국무총리 등은 송 대표 대국민 사과와 관련해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낙연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이제 민주당은 미래를 더 말하겠다”며 “서로를 탓하며 역량을 소진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송 대표는 강도 높은 표현으로 조국 사태에 대한 사과에 나섰다. 송 대표는 앞서 당이 조 전 장관 자녀 입시비리 의혹을 엄호한 데 대해 “국민과 청년의 상처받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점을 다시 한 번 사과한다”, “우리가 원칙을 지켜왔는지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박원순·오거돈 전 시장의 성추행 사건 관련 사과와는 명확한 온도차를 드러냈다. 송 대표는 재판이 진행 중인 오 전 시장에 대해 “재판 과정에서 시민과 피해자에 대한 솔직한 인정, 반성과 위로가 있기를 기대한다”며 사과를 촉구했다. 그러나 조 전 장관 자녀 입시비리 의혹에 대해선 “조 전 장관도 수차례 공개적으로 반성했다. 우리 스스로도 돌이켜보고 반성해야 할 문제”라며 반성의 주체를 여권 전체로 확대했다.
사과 내용도 차이가 두드러졌다. 송 대표는 ‘피해호소인’ 논란 등 성추행 사건 관련 당의 대응과 관련해 “두고두고 속죄해도 부족하다”며 전적인 책임을 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조국 사태에 대해선 법률적 문제와 자녀입시 문제를 분리해 평가했다. 또 법률적 문제와 관련해 “검찰수사 기준이 윤 전 총장 가족비리와 검찰 가족의 비리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며 검찰에 화살을 돌렸다.
송 대표의 이 같은 사과에 당내 반발도 양극화하는 모양새다. 우선 “메시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한 중진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사과에 사족(蛇足)이 너무 많다”고 평가했다. 중진 의원은 “사과는 간결하고 명확해야 하는데 윤 전 총장 가족수사를 언급하고, 법률적 문제와 자녀 입시비리 문제를 분리하는 등 곳곳에 구멍이 났다. 양다리를 걸친 느낌”이라며 “이래서 국민의 공감을 살 수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반면 강성 친문으로 분류되는 김용민 최고위원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조국 사태는) 민주당이 나서서 사과할 부분이 아니다”라며 다른 이유로 불만을 토로했다. 김 최고위원은 “이미 조 전 장관이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 충분히 사과했다”며 “오히려 이 사건을 자꾸 (조 전 장관 잘못으로) 몰아갈 게 아니라 윤 전 총장의 검찰권 남용 부분을 끊임없이 지적해 줘야 한다”고 못 박았다. 민주당 당원 게시판에선 친조국 성향 일부 당원이 “명분 없는 조국 죽이기”라며 송 대표의 사퇴를 촉구했다.
김한정 의원도 “이제 조국 교수를 좀 놓아주자”며 “당이 왜 나서나”라고 반문했다. 김 의원은 페이스북에 “골라 패도 정도가 있지 너무 심하다”며 “정작 (조국) 본인은 ‘자기를 밟고 앞으로 가라’고 말하지만, 당까지 나서서 부관참시도 아니고 밟고 또 밟아야 하겠나”라고 덧붙였다.
송 대표는 이날 검찰개혁에 대해선 “당연히 필요하다”고, 언론개혁에 대해선 “정권을 비판하는 언론을 재갈 물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최대 현안인 종합부동산세 조정과 관련해선 “1가구 1주택자의 경우 집값을 본인이 올린 것도 아니고, 정부 정책의 미흡함으로 인한 것”이라며 “바로잡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이날 민심경청 결과 보고회에서는 국민 3명 중 1명 이상이 부동산시장 안정화를 민주당의 최우선 추진사항으로 꼽았다는 내용의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윤관석 사무총장에 따르면 당원 및 일반 국민 등 총 5만2715명이 참여한 이번 설문조사에서 34%가 민주당의 중점 추진사항으로 ‘부동산시장 안정화’를 꼽았다. 검찰·사법개혁(19%), 코로나19 백신 확보 및 방역(15%), 경제 활성화(12%) 등이 뒤를 이었다.
배민영·이동수 기자 goodpoint@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